1. "평소에 지도 가지고 공부 많이 하셨나 봐요. 아니면 머리가 좋으신 건가? "
앞에 나왔던 택시 기사. 그 기사가 길 잘 찾아가는 모습 보고 이렇게 말할까요? 반면, 우리는 영어 단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어 공부 많이 했구나. 머리가 좋으니 그 많은 단어를 다 외웠겠지?"
영어나 운전, 두 가지 모두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요. 습관일 뿐입니다.
2. 제가 통역대학원 들어간 걸 의아하게 생각한 대학교 친구들 많았습니다. 그 친구들의 입에서 나왔던 말은 "너 영어 언제 공부한 거야?" 이 말을 듣고 그냥 웃고 말았지만, 사실은 "나 공부한 적 없어"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라고 하면 괜히 거창해집니다. 시간 정해서 책상에서 하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공부'가 아닌 '놀이'가 되면 생활이 영어가 됩니다. 길거리에 있는 카페 간판 하나를 통해 영어를 익힐 수도 있는 거에요.
"그 많은 단어를 어떻게 다 외웠어요? 머리가 무지 좋은가?" 이 말을 들을 때도 보통은 웃어넘기고 맙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라면 모를까, 말로서의 영어 학습에서는 굳이 단어를 외우려 들지 않거든요. 외워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좋아서 영어 잘 하는 걸까요? 그렇게 따지면 머리 나쁜 사람은 하고 싶은 말도 못하면서 살아야겠네요? 매일 우리말 잘 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 모두 머리가 좋다는 말도 되네요. 지금 우리 입에서 매일 나오고 있는 우리말이 지금까지 해온 한국어 '공부'의 결과라는 말인가요?
언어는 공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머리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언어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마음이 따라가서 습관적으로 하는 게 언어에요.
3. 영어 시험.
우리는 시험 점수 잘 나온 아이에게는 "영어 공부 열심히 했구나", 점수 안 나온 아이에게는 "영어 공부 좀 해라" 말합니다. '영어 잘 하는 아이=공부 잘 하는 아이=머리 좋은 아이' 등식이 나오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우리말 가르칠 때 점수 매겨서 평가하지 않습니다. 옆집 아이가 또래들보다 말을 더 잘 한다고 해서 "아유~ 우리말 공부 열심히 했구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영어만 유별납니다.
영어를 공부로 인식하고 실제 이상의 거창한 존재로 생각하게 만든 주범은 시험이지만, 시험을 본다는 그 자체가 원인은 아닙니다. 단지, 학교 영어 수업과 시험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거죠.
영어를 '지식'이 아닌 하나의 '기술'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영어를 가지고 '필기' 시험을 봅니다. 객관식 문제 주고 맞는 답 고르기, 주관식 문제라 하더라도 펜으로 답을 쓰는 필기 시험입니다. 수업도 실기를 위주로 하지 않고 이론과 지식을 전달하는 필기 수업 형태죠.
아니, '입'은 놔두고 뭐에 쓰려고 하는 건가요? 멀쩡한 '입'은 제쳐두고 왜 '손'을 써서 영어 시험을 보게 하는 걸까요?
학교 영어 수업 방식대로 음악 수업을 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음악 시간에 노래는 전혀 안 하는 겁니다. 선생님도 학생도 노래 안 합니다. 대신, 음악사, 화음 이론, 화성법, 작곡가 약력, 악기의 종류, 국악의 특징, 이런 '지식'을 강요 받고, 또 제대로 했는지 필기 시험을 통해 확인합니다. 그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배운 지식을 갖고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음악을 필기 시험으로 평가한다? 웃기지 않나요?
만약에 대학교 졸업 때까지 음악이 '주요 필수 과목'이고 또 이런 식으로 필기 시험을 거쳐야 하는 대상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지금처럼 노래방이 이렇게 잘 될 리 없습니다. 아니, 아예 노래방이라는 게 생겨나지도 않았을 걸요. 술 먹고 기분 좋아서 노래라도 하는 사람은 "그래, 노래 쫌 하나보지?" 소리 들을 각오 해야 합니다. 기분 좋다고 흥얼거리기라고 하면 주변에서 재수 없다는 말 듣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음악 시험 100점 받는 아이가 노래도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어는 시험 100점 받는 아이가 잘 한다고 착각합니다.
체육 시간에 운동장 나가서 축구는 안 하고 교실에 모여서 월드컵 역사, 킥의 종류, 반칙의 종류 같은 지식만 배우는 있는 광경이 그려지나요? 축구 못 하는 학생에게 "체육 공부 좀 열심히 해라" 라고 하면 어떨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 수업 듣고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점수도 높은데 왜 실제 축구 경기만 하면 이렇게 못하는 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모습, 상상이 안 됩니다.
유독 영어에서만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우리들입니다.
4. l I've been studying English for ten years, but I don't speak English well.
"영어 공부 한 지 10년 됐는데 영어 잘 못 해요" - 영어 자신 없을 때 많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할 때 '공부'니까, 영어로 할 때도 'study'가 나옵니다.
사전에서 study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요.
l to apply oneself to acquiring a knowledge of (a subject)
to examine or investigate carefully and in detail
to observe attentively; scrutinize
to read carefully or intently
study라는 단어는 전반적으로 무거운 느낌입니다. carefully, attentively, intently, 이런 단어를 보니 심각한 느낌이 팍팍 듭니다. 그리고 knowledge, 얘도 마음에 안 듭니다. 저는 영어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지금까지 영어 배운 게 아니거든요.
studying English는 영어의 학문적인 측면, 즉 어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나 어울릴법한 말 아닌가요?
우리는 studying English 말고, 그냥 간단하게 learning English 하면 안될까요?
5. 어느 한 분야에 빠져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행동을 '공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재미있기에 남들이 '공부'로 착각할 정도로 빠져드는 게 아닐까요? 똑같은 것을 하더라도 좋아서 하는 것은 '놀이'지만, 싫지만 억지로 하면 '공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영어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토익 가지고 놀 수는 없습니다. 영어는 배워서 익힌다고(學習) 말하지만 토익을 배워서 익힌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토익 같은 시험은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시험은 며칠 전에 벼락치기로 준비할 수도 있고, 그렇게 준비한 것은 시험 끝나면 잊어도 됩니다. 답 맞추는 것이 1차 목표인 기계적인 모습, 그래서 토익과 같은 시험에는 '공부'라는 단어가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토익 공부 하니?" "이번 방학부터 토익 공부 시작한다"
잘 어울리는 두 단어. '공부'는 시험에나 어울릴 법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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