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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공...

JJun ™ 2006. 9. 12. 17:10
LONG
6. 학습자와의 대화: 가정법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나요?
 
 

Hi, everyone!

오늘은 최근 저희 카페에 올라왔던 가정법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티끌공의 정신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예라고 생각이 됩니다.


가정법이라는 부분 있잖습니까? 시제를 한 단계씩 앞으로 당겨 쓰는 그 문법 사항이요.

'내가 만일' 이라는 노래 아시나요? 안치환씨의 노래인데,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하겠소.. 로 시작되는 거요.. 이거 어느 책에 보니까 영어로 번역을
Were I the sky, I would sing a song for you. 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그리고 설명하길 If I am the sky, I will sing a song for you. 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현재 사실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더군요.. 크게 어렵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하늘이 될 가능성은 희박
하니까요.. (중략)

그런데 말이죠.. 이런 거 있잖아요.. '만약에 오늘 무슨 일이 생기면 말야,' 라던가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말야' 이런 것들이요..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내가 대통령이 된 상태'가 아니니까 If anything happened, If I were the president 라고 써야 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고, 내가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정법을 쓸 필요가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중략) ... 선생님들의 조언 부탁 드립니다.


OO님, 좋은 질문 감사 드립니다.

가정법은 매우 어려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실 생활에서 표현해야할 의미들은 끝없이 다양하고 많은데 가정법은 그 형태가 과거, 현재, 미래, 등 몇 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몇 개 안 되는 도구로 그 다양한 의미들을 표현해 내야 하기 때문에 각 형태가 정말 “가랭이가 찢어질” 정도로 의미의 확장이 일어나는 것이죠. ^^ 이것이 어떤 때는 이해하기 아주 힘든 정도로 발전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영국인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You could have come today.

분명히 표준 문법에는 어긋나는 문장입니다. could have come은 원래 과거 사실의 반대를 말하는 가정법 과거형으로 (사실은 오지 않았는데) “올 수도 있었다”는 말이고, 또 이와 비슷하게 should have come은 (사실 오지 않았는데) “왔어야 했다”,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현재를 나타내는 today는 여기 맞지 않죠.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대화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인즉 이 today라는 날에 그녀 집을 방문하도록 초대를 받았으나 제가 사정상 다음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날 그녀를 어느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 이야기를 하다가 You could have come today (오늘 우리 집에 올 수도 있었잖아요) 이 말이 나온 것이죠.

분명히 방문을 하는 것은 오늘이므로 현재, 또는 미래의 일인데 왜 과거형을 썼을까요? 여기에는 어떤 가정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방문을 않기로 결정한 것은 과거 일이고 그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서 결국 방문하지 않는 것을 과거에 이미 일어난 사실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사실에 반대되는 가정법 과거를 쓴 것이죠. 그러니까 You can/could come today라고 해서 단순 가능성으로 말을 하면 집에 오라는 은근한 압력이 되니까 가정법 과거를 써서 집에 안 오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도를 암시한 것입니다.

이렇게 언어 현장의 실제 의미들은 복잡 다양하기 때문에 제한된 형태들은 최대한의 유연성을 가져야 하고 때로는 문법의 한계를 넘나들 정도로 스트레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원칙 없이 어떤 의미던지 주어 담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 원칙은 역시, 의미간의 상호 유사성입니다. 즉, 위의 경우에도 상황이 “과거 사실에 반대”라는 가정법 과거의 통상적인 의미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 형태를 쓸 수 있었던 것이죠. 사실 이것은 가정법만이 아니라 언어 전반에 걸친 현상입니다.

서론이 좀 길었네요. ^^ 가정법 미래는 말씀하신 대로 "가능성이 희박한" 미래를 말할 때 쓴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때 가정법을 써야 하느냐? "희박한 가능성"이란 대체 무엇이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 여기 해당이 되느냐 아니냐? 이런 것이 궁금하신 것이죠?

그런데 가정법 미래의 의미도 실생활에서는 정말 다양한 양상을 띄기 때문에 여기 어떤 고정된 의미, 혹은 정의가 있는데 여기에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식으로 따지게 되면 결국 언어를 수학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보다는 일단 사용례들을 통해 그 의미의 흐름을 좀 흡수해야 합니다. 가정법 미래는 동사의 과거형 (If the Earth stopped spinning...)과 were (to) 형 (If the Earth were to stop spinning...)이 있고 또 비슷한 의미로 should가 쓰이기도 합니다. (If the world should stop revolving spinning slowly down to die...) 마지막 문장은 좀 낮이 익네요... 맞습니다, 팝송 IF입니다. 이 중 were to 형을 보겠습니다.

다음은 Bank of English에 if+1,2were+to (if 뒤에 1~2단어를 사이에 두고 were와 to가 나오는 용례)로 검색한 예문 중 일부이고 6번은 Google입니다:

 

1.    And if you were to be killed in an accident, your family would have a considerable lump sum to fall back on.

2.    We must, of course, ask ourselves how long would our uranium resources last if we were to use nuclear power at this rate?

3.    What if you were to become far busier in September than you anticipated and have to take on additional staff?

4.    I would further add that if I were to become successful in gaining nomination to be a member of the Conference Arrangements ...

5.    If a women were to paint in this way today, she would receive heavy criticism.

6.    ~ if the Earth were to stop spinning, it would no longer have a gravitational pull.

 

자, 여기서 왜 were to가 쓰이는지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1번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좋지 않은 일, 2번은 현재 진행되고 있으나 바람직하지 않은 일, 3번도 가능하지만 예상을 넘어서는 일, 4번은 가능하지만 좀 어렵다고 보이는 일, 5번은 현재는 잘 없는 일, 6번은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입니다.

또, were의 예문은 이런 것이 있습니다: It would be a disaster if he were not re-elected (Collins).

자, 이런 다양한 의미들의 유사성이 느껴 지시나요? 2번 같은 경우 원자력을 이렇게 많이 (at this rate)쓰는 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인 만큼 “희박한 가능성”은 사실 아니지만 그래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점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작은” 일과 뭔가 유사성이 느껴지는 것이죠.

물론, 저는 이렇게 분석적인 설명을 하지만 유사성은 실제로는 즉각적인 느낌이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그러니까 제 설명은 머리로 이해를 하기 보다는 예문들을 떠올리며 were to의 의미들을 스스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는 “그럴 가능성은 작지만 그래도 ~한다면”, 혹은 “그래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한다면” 이런 느낌들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느낌과 친숙해지게 되면 조금이라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편하게 were to를 사용하면 됩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어렵게 생각된다던지,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던지, 사실은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던지, 불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던지, 어떤 이유에서건 느낌이 닿으면, 이것이 “희박한 가능성”이냐 아니냐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If I were to become president... 이렇게 해버리세요.

이제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시나요? 수학에서의 의미는 정의고 언어에서의 의미는 느낌입니다. 정의를 사용할 때는 정의의 내용에 일치하는가를 일일이 따져야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은 어떤 각도나 정도로든 유사성이 느껴지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되는 것이죠. 언어는 알고 보면 참 편하고 좋은 것입니다.


도움 말씀 감사합니다. 뭔가 딱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보다는 상황별로, 느낌별로 조금씩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두고 두고 읽어 보고 feel 을 받아야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참고: 코퍼스(Bank of English)는 방대한 네이티브 영어의 데이터베이스로서 다양한 검색어의 조합을 통해 영어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조회하고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학습 도구입니다. 곧 이 놀라운 인터넷 공짜 네이티브 개인교사를 여러분들께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7. 유진승의 영어 정복기/ 총정리

 

Hi, everyone!

제가 미국에 건너간 것은 스무 살 때였습니다. 이 때부터 영어에 대한 저의 의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영어를 항상 써야 하는 환경 때문에 영어는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편리하게 사용하는 생활의 도구라는 것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죠.

표현들을 문법적인 고민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영어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표현 하나하나가 탐스러운 과일처럼 구미를 당기니 한 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았고, 이것들을 어떻게든 써먹고 싶어 근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두꺼운 문법 책을 뒤적이며 문법을 이해하려고 고민할 때 영어는 힘든 것, 억지로 하는 것, 골치거리, 심지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하나 하나 쓰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쳐가는 것이 넘 재미있는 것이었어요.

어학원을 다니며 준비하는 처음 1년의 과정은 영어가 머리 속에서 재 구성되는 혼돈, 그리고 발견과 창조의 시간이었습니다.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갔고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이 1년 후라고 기억이 됩니다. 그 때 대학에 들어갔는데 토론, 논문 작성, 등 학업에 별 불편이 없었거든요. 다만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친구들의 빠른 대화는 따라 잡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급기야 대학 생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어느 미국인 친구가 대화 도중 미국에서 태어났냐고 제게 물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영어가 어색한 티가 많이 났다면 어디서 태어났냐, 그리고 언제 미국에 왔냐, 이렇게 물었겠죠. “휴~ 이젠 내 영어가 어느 정도 되었구나” 하는 흐뭇함이 마구 밀려들어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티끌공의 기본 정신은 영어의 정체를 바로 깨닫는 것, 즉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도구라는,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입니다. 영어를 생활의 일부로 인식하게 될 때 영어 대한 절실한 필요성과 흥미를 느낄 수 있고, 이것이 바로 발전의 절대적인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바로 저의 뼈저린 경험입니다.

어떤 정밀한 공식에 맞추어 움직이는 전문가의 도구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쉽고 편하게 쓰는 삶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 의미와 구조에 있어 많은 신축적인 변화와 예외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망치는 못질을 하라고 만든 것이지만 망치로 호두를 까먹을 수도 있고 종이 더미를 눌러놓을 수도 있는 것이죠.

삶이라는 거대한 세계에서 끝없이 생겨나는 다양한 의미들을 어찌 머리로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 삶과 그 의미 속에 뛰어들어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며 설명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의 전체적인 체계, 정확한 공식을 파악해야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위대한 허상이 우리를 혹독한 고생의 길로 인도했다면 이젠 전체가 아니라 티끌들, 즉 표현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익혀서 결국 전체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되는 티끌 모아 태산의 길이 우리를 해방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티끌공적인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면 문장 하나하나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특히 이해가 잘 안 되는 단어, 예를 들어 ever같은 단어가 나온 문장을 보면 전에는 “골치 아프다”, “피하고 싶다” 이렇게 느끼던 것이 이제는 “오우 예! ever 문장 하나를 알게 되었고 그만큼 ever와 친해졌넹~!” 이렇게 됩니다. 문장 하나 하나가 다 젓가락 연습의 기회가 되는 것이죠.

단, 영어를 좀 더 정확히 사용하고, 좀 더 정확히 이해하고, 아는 내용들을 문법적으로 정리, 소화하는 노력들도 항상 병행해야 합니다. 사전, 코퍼스, 문법 자료, 주위 사람들, 등을 잘 활용해야 하겠죠. 언어가 도구라는 것을 이해하고 문법을 절대시하지만 않는다면 이런 노력들이 꾸준한 사용의 노력과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게 됩니다.

제가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영어를 잘 하지 못했을까요? 영어에 대한 바른 의식이 있다면 한국에만 살았어도 결국은 영어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렸겠지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얼만큼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외국에 살면 이런 환경을 만들어 내기가 훨씬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외국에 산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한국에 산다고 해서 그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외국에서 일년 동안 어학 연수를 하고 돌아가면서 영어가 별로 안 늘었다고 걱정하는 분들을 가끔 봤습니다. 내내 한국사람들끼리 뭉쳐 다니고 영어는 학원과 TV 정도로 적당히 한 결과죠. 외국에 어학연수를 가더라도 학원에 다니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학원에 가면 네이티브는 선생뿐이거든요. 차라리 거기서 일을 하던지 자원봉사, 등을 통해 원어민들을 만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영어를 훨씬 많이 배웁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조금만 찾아 보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죠. 영어 카페, 영어 펜팔, 영어 방송, 영어 마을, 많은 외국인들, 등등... 또, 말할 상대가 없더라도 영어로 일기를 쓴다던지, 혼잣말을 한다던지 하며 최대한 영어 사용의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저는 지금도 생각을 주로 영어로 하고 스케줄, 메모, 등 일상적인 내용들도 주로 영어로 씁니다. 한국에 살면서 영어를 까먹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까요? 우리 영작사랑 카페에서도 대부분의 대화가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답니다.

이제, 제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여러분이 직접 실천으로 확인해 보실 차례입니다.

 

 

 

8. <영어공부 절대 하지마라>의 허와 실: 영어는 학과목이 아니라 언어다.

 

전번에 말을 했지만 발상의 전환을 해야 돼. 영어는 학과목 중의 하나가 아니야. 수학이나 역사가 아니라 언어야. 언어라구. 언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 따져가며 학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피아노처럼 익히는 거야. 문법이나 영어의 구조를 잘 안다고 해서 말 잘 하게 되는 게 아닌 아치는 건반의 위치, 피아노의 원리를 잘 학습했다고 해서 피아노를 잘 치게 되는 건 아닌 것과 같아.”

 

자동사, 타동사, 몇 형식 문장 뭐 그런 게 다 필요 없다는 얘긴가요?”

 

그렇지. 그런 건 필요한 사람들이 따로 있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 필요가 없어. 우리나라 사람들 한글 문법 하나도 몰라도 말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잖아.” (p. 55)

 

언어는 삶의 도구일 뿐이다. 도구를 잘 쓰기 위해서는 그것을 쓰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하는데 그 도구를 잘 쓰느냐 못 쓰느냐는 그 도구가 얼마나 몸에 뱄느냐에 달려 있다.” (p. 81)

 

얼마 전 크게 유행한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저는 최근에 이 책을 읽고 선정적인 제목의 상업적 분위기와는 달리 뭔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영어 학습에 관한 저의 견해와 기본적인 방향이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반가웠죠. , 영어 학습을 인위적인 공부에서 탈피하여 자연습득으로 최대한 접근시키고자 하는 기본 취지는 제가 전적으로 공감하는 내용이라서 이 칼럼을 통해 이 부분을 소개 드리고 또한 그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해 보려고 합니다.

 

영어를 수학 같은 학과목이 아닌 언어, 혹은 생활의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영절하>의 기본 명제이고 이것은 또한 제가 칼럼을 통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바입니다. 영어를 문법적으로 따지고 분석해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쓰는 법을 몸에 익혀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머리보다 혓바닥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죠 입니다. , 어휘나 문법을 지식이 아닌 느낌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몸에 익히는 방법으로 저자는 단계적으로 자기 수준에 맞는 영어 테이프를 반복해서 듣고, 그것을 받아 적고, 낭독하고, 영영사전으로 모르는 단어들을 찾고 그 해설과 예문을 또 낭독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3 단계). 다음에는 영어 비디오를 가지고 이와 똑같이 하고, 그 뒤에는 영자신문을 낭독하고 그 내용을 자기 말로 다시 표현해 보는 말하기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4~5 단계).

 

3단계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현상은 영어의 구조가 저절로 깨우쳐진다는 것입니다.

 

이 단계 (3단계)는 영어로 씌어진 글을 사전 없이 읽어 제끼는 수준으로 가는 필수 단계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기본 어휘력과 문장형태에 매우 익숙해지는 것이다. 언어가 습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단계에 이르러서다. 사전의 설명을 가만히 보면, 언제나 비슷한 패턴으로 문장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새 인지하게 된다. 나중에 미국 방송의 드라마나 미국 영화를 자유자재로 듣게 되면 그들이 쓰는 문장 패턴이 몇 가지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습관적으로 늘 쓰는 문장들로 일상 언어가 구성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때부터 입만 열면 영어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게 소위 말하는 혓바닥이 근질거리는 현상의 초기 단계다 (p. 106).

 

처음에는 영어로 된 (사전의) 해설이 매우 낯설고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반복되는 단어와 표현이 쌓이면 결국 어느 날 갑자기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 이 단계에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가장 큰 갈등은 과연 이렇게 해서 단어 하나라도 제대로 의미를 알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 그것은 아기가 언어를 접하고 익히는 방법과 원칙적으로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알든 모르든 일단 들어오는 대로 접수하여 저장하다 보면 어느새 깨우치게 되는 것. 이것을 저버리고 싶은 유혹은 시간이 가면서 굉장히 강렬해진다. 영한사전 한 번만 펼쳐보면 간단히 고민이 해결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영원히 영어-한국어-영어라는 연결고리를 끊지 못한다. ... 결국 단어의 의미 뿐만 아니라 설명문 만드는 기술까지 송두리째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문법도 자동으로 터득된다. 문법이란 바로 문장을 만드는 합의된 규칙이고, 그것은 문장에 익숙해지면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p. 115).  

 

영어 학습이 어린 아이의 자연적인 언어 습득과 원칙적으로 같아야 한다는 것은 저의 기본 입장이기도 합니다. 또한 문법이 자동으로 터득된다는 것도 문법을 따질 필요 없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꾸준히 사용하다 보면 그 구조와 문법적인 체계가 저절로 깨우쳐지는 티끌공의 정신과 일맥상통합니다. 그 때부터 이런 표현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혓바닥이 근질거리는현상이 오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렇게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영절하>가 실제 해보니 안되더라는 비난을 많이 받고 심지어는 수많은 안티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하루에 2시간씩 해서 6개월 만에 영어가 모국어가 된다는 과장된 선전이 문제입니다. 영절하 카페에 경험담들을 보더라도 이 방식으로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게 되었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하루에 2시간 이상 훨씬 많이 투자를 하더라도 6개월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 중론인 것 같습니다. 실제 2~3년을 열심히 하신 분도 영어를 뛰어나게 잘하지는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절하>의 방법론 자체의 한계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제가 본 영절하의 가장 큰 문제는 영어 학습을 고난의 강행군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은 하나하나 표현을 알아가고 사용하며 깨닫는 즐거움의 연속이어야 하건만, 이해도 안 되는 문장들을 끝없이 듣고, 안 들리는 발음을 받아 적고, 뜻도 모르는 영영사전을 무한정 뒤적이며 깨달음이 오기를 기다리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죠. 영절하 카페의 경험담들을 통해 그 고통의 현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 잡는다는 말까지 나오더군요.

저자는 영어 학습이 어린아이의 자연습득 과정과 같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자연습득은 이런 고통과 엄청난 인내의 과정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가 언어를 배울 때 처음에는 무조건 많이 듣고 축적하는 것은 맞습니다. 이것을 모방하기 위해 첫 단계에서 영어 테이프를 들으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아이는 표정, 손짓, 발짓으로 엄마와 주위 사람들과 재미있게 대화를 합니다. 삶의 현장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표현 하나하나를 배우고 사용하려는 강한 드라이브를 유발시킵니다. 녹음된 음성에 몇 시간씩 귀를 동여매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이런 면에서 <영절하>는 자연습득과는 정 반대이고 오히려 하나씩 차근차근 알아가는 학교 식 영어공부가 더 자연습득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인내와 투지로 이 방식을 따라 성공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도 성공한 사람은 60명중 세 명밖에 안 된다고 말하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실현이 어려운 과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문법에 대한 인식입니다. 저자는 문법은 영어 학습에 전혀 필요가 없고, 문법 공부를 하면 오히려 영어실력이 퇴보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당연히 현재 학교의 영어 수업은 그럼 어찌 하오리까 하는 독자들의 질문이 빗발치게 되었고, 이윽고 <영절하> 2탄에서는 학교 식 교육을 거부하고, 선생들은 모두 어학연수를 보내고 학생들끼리 <영절하> 식으로 공부하라는 극약 처방을 내놓게 됩니다.

문법은 학문이요 인위적인 것이고 영어는 언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문제입니다. 문법도 자연습득의 일부입니다. , 문법은 오랜 자연 습득의 내용을 짧은 기간에 흡수할 수 있도록 정리해 놓은 것에 불과하죠. <티끌공(7)>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제가 미국에서 영어를 단 기간에 정복할 수 있게 해준 것도 한국의 중, 고교에서 다진 문법과 독해 실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절하 식 훈련을 할 때도 테이프를 듣고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문법적 기반이 있어야 그 과정을 그만큼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겠죠.

사실, 저자가 배척하는 것은 문법 자체가 아니라 영어를 수학처럼 생각하는 문법에 매달린 영어공부 태도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티끌공이 주장하듯, 영문법을 하나의 분석하고 이해해야 할 지식체계로 생각한다면 진짜 살아있는, 생활을 통한 자연 습득에 다가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언어의 본래 모습에 걸맞은 자세로 문법을 공부한다면 저자도 문법을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영절하>의 허와 실: 영어공부에 한국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

 

영어 학습에 한국어를 개입시키는 것에 대해 저자는 단호한 비판을 가합니다.

 

(2단계) 그 다음에 일어나는 현상은 영어를 자꾸 한국어로 번역하려는 습관이 사라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 영어를 자꾸 한국어로 번역하려는 습관 때문에 영어를 잘할 수 있었는데도 못하게 된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걸 모른다. 물론 이것 역시 독해일변도의 교과과정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 나쁜 습관이 사라져야 비로소 영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한국어의 어의로 영어의 어의를 이해하는 넌센스와 결별해야만 영어가 또 하나의 몸에 밴 언어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p. 87)

 

저자가 영어 공부를 하지 말라는 중요한 이유가 공부에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영어에 한국어가 자꾸 끼어드는 한 영어를 네이티브와 같이 “체화”시키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죠.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의 수제자 역할을 하는 K의 노력이 어느 단계에서 갑자기 퇴보하게 된 것도 몰래 한국어를 사용한 독해 해설 테이프를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 영절하 카페에 있는 경험담들을 읽어보면 영어를 한국어를 통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을 이 방식 큰 소득으로 삼는 것을 볼 수 있죠.

 

처음 영어를 공부하는 분들은 누구나 이 한국어 간섭현상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 문제를 영어의 이해와 표현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해]

- 한글 뜻풀이로 영단어의 의미를 이해한다.

- 문장이 한국어로 이해가 안되면 완전히 이해가 안된 것 같다.

 

[표현]

- 일단 한국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옮긴다.

- 한국어 뜻풀이에 의존해서 영어 어휘를 사용한다.

- 한국어 식 구조로 영어 문장을 만든다.

 

영어가 늘어갈수록 한국어의 간섭이 없어지고, 점차 영어를 그 자체로 이해하고 그 고유한 느낌을 알고 또 영어로 바로 생각하고 영어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영한사전은 절대 보지 말고 철저하게 영어만 듣고 보라고 하죠. 한국어 습관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이렇게 강력한 단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국어 학습에서 모국어를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모국어로 이미 형성되어 있는 개념 체계를 모조리 무시하고 영어 개념체계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은 바퀴를 다시 발명하는 것과 같은 무리한 일입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삶을 통해 오랜 기간 형성된 모국어의 개념 체계에 외국어를 접목시켜 나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한글과 영어, 동양과 서양의 개념체계에 차이는 많이 있지만 그것은 학습 과정에서 조금씩 조정해 나가면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democracy의 의미를 영영사전을 통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Democracy: a system of government in which all the people of a country can vote to elect their representatives. (
Oxford)

 

대표를 선거로 뽑는 정치 제도를 democracy라 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투표 그 자체가 아니라 모든 성원들의 인권과 의견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투표도 하지만 사실은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 항상 99%의 찬성표가 나오는 나라들도 있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 민주주의의 개념은 우리가 성장하며 세상에 대한 안목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만들어진 것입니다. 영영사전만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죠. 이 개념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통해 democracy와 연결이 되면 우리는 democracy라는 단어를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서양에서 말하는 democracy와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그 의미가 완전히 같지는 않겠죠. 그러나 이렇게 해서 적어도 democracy의 대부분의 의미는 파악이 됩니다. democracy라는 단어 만의 독특한 점들은 계속 접하면서 조금씩 익혀가면 되죠. 이 외에도 freedom, equality, human rights, 등 사전만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단어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apple Oxford 사전에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a round fruit with shiny red or green skin and firm white flesh”. apple이라는 단어를 처음 보는 사람이 이 설명만 보고 “아하, apple = 사과로구낭~” 이렇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대충 짐작은 간다 하더라도 사과가 맞는지, 사과 비슷한 다른 과일은 아닌지 확신이 안 서겠죠. 그러나 직접 “사과”라고 해 주면 apple의 의미가 한방에 해결됩니다. 

 

외국어 학습에 있어서 특히 초기 단계에는 모국어의 사용은 불가피합니다. 제가 학교에서 문법을 공부한 것도 한국어를 통해서였고, 영어공부를 더 쉽고 재미있게 하기 위해 한국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죠. 따라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영어 학습에서 어떻게 한국어를 배제시키느냐가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되 어떻게 하면 부작용 없이 잘 사용하느냐인 것입니다. 그 길은 한국어 간섭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한국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 나가는 데 있습니다. 저자의 권고가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우리에게 극명하게 드러내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독해를 할 때 문장을 하나하나 한국어로 옮겨가며 의미를 확인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한국어의 개입 없이 그 문장에서 전해지는 상황과 이미지를 바로 떠올리고 넘어가는 연습을 해보세요. 영어를 계속 듣고 받아 적고 하는 저자가 권하는 방식도 너무 강압적으로 하지만 않는다면 좋을 것 같고, 실제 효과가 있다는 체험담들도 봤습니다. 그리고 물론, 쓰기와 말하기도 한국어를 되도록 거치지 말고 생각부터 영어로 시작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죠.

 

특히 <어휘사용 터득의 길> 시리즈에서는 한글 뜻풀이 때문에 영어 어휘의 정확한 의미와 느낌이 잘못 이해되는 문제와 그 해결책인 용례중심 학습법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한/영 의미 관계를 잘 정리해주는 신뢰할 만한 한영, 영한 사전이 아직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한국어의 구조를 따라 콩글리쉬 문장을 만드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의 하나입니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해결을 해가야죠. 저희 카페의 BTE (Back translation exercise)에서 이 이슈를 자주 다루고 있고 능률 칼럼의 <간결한 영어 표현> 시리즈에서도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끝으로 한마디. 영어는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렵게 만들어졌을 뿐입니다. 어려운 것이라면 서너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유창하게 잘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어가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영어, 하면 어려운 문법 용어와 난해한 독해 문장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죠.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건만, 불필요하게 어려운 것들과 씨름을 하다가 영어에 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영어가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마저 알지 못하게 되는 딱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라도 영어가 어렵다는 그 허상을 깨고 어린아이가 된 심정으로 쉬운 그림책부터 읽어보고 쉬운 말부터 한마디씩 해 보세요. 중요한 것은 끈기와 반복입니다.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만 하게 되면 머지않아 태산 위에 우뚝 선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문법과 독해를 비판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어를 개입시킨 영어공부의 부작용입니다.

ARTICLE

1. 영어에 대한 중대한 오해

 

티끌 모아 태산이 바로 언어의 본질입니다. 아이들이 언어를 이렇게 배우죠.

하나 씩 둘 씩 표현들을 듣고 따라 하면서 언어의 티끌들이 계속 머리 속에 모이다 보면

이들을 연결하는 규칙들, 즉 문법의 체계가 자연스럽게 터득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어를 이런 자연 습득이 아니라 수학과 나란히 학과목으로, 문법 위주로 배웠기 때문에 영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중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영어는 항상 (혹은 대부분) 정확하게 문법에 맞게 사용된다. 따라서 문법의 체계를 잘 이해하면 영어는 해결이 된다. (어휘만 늘리면 된다)
2. 영어에서 어려운 부분은 머리로 연구해서 알아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영어를 수학 같은 학문, 즉 지식 체계로 공부하려는 태도입니다. 수학에서는 모든 것이 정확히 공식대로 움직이고 따라서 공식만 확실하게 알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죠.

그러나 영어는 학문이기 전에 언어입니다. 네이티브들에게 어휘와 문법은 수학 공식처럼 절대, 명료한 법칙이 아니라 오랫동안 굳어진 사용 습관, 모국어에 대한 익숙한 느낌, 그리고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변화시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의 도구입니다. 따라서 획일적인 문법으로 설명이 안 되는 예외적 표현, 관용적 표현, 애매 모호한 표현, 등이 많이 생기게 되고 또 문법은 세월과 함께 변화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의 사용을 통해 형성된 이런 습관과 느낌들을 머리로 연구해서 다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생활의 도구이므로 영어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적 이해보다 익숙함이고, 익숙함은 반복적인 사용을 통해 얻어집니다. 여기서 사용이란 물론, 읽기, 쓰기, 등 모든 영역을 포함합니다.

젓가락을 처음 써보는 사람은 매우 불편해 합니다. 간단한 것도 제대로 집지 못하죠. 그러나 자꾸 쓰다 보면 어느새 젓가락은 나의 분신이 되어버리고 그것으로 밥도 떠먹고 생선도 발라먹고, 등등 젓가락에 생소한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동작도 힘 안들이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도 똑 같은 생활의 도구이기 때문에 이렇게 공부해야 합니다. 무조건 자꾸 써서 나의 분신을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여기서, 아주 당연한 의문이 생깁니다. 어떻게 젓가락과 영어를 비교할 수 있나염? 영어도 많이 써서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영어는 일단 뜻을 알고 문법을 알고 등등, 젓가락처럼 바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요?

하하, 그 말도 맞습니다. 우리는 통상 영어는 먼저 완전히 이해한 뒤 사용을 해서 익숙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어가 언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각으로 보면, 더 바람직한 방식은 그 반대, 즉 먼저 사용을 해서 익숙해지고 이해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이해도 하기 전에 사용을 하라는 건지, 점점 더 미궁에 빠져 드시나요? 그럼 한가지만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영어를 “이해”하기 위해 그 많은 날들을 밤새워 씨름할 때 그 이해는 무엇을 위한 이해였나요? 표현을 당장 생활에 사용하기 위한, 직접적인 필요성에 의한 이해였나요, 아니면 지식적인 이해, 분석을 위한 이해, 또는 시험을 위한 이해였나요?

우리는 문법에 근거한 지식적인 이해를 위주로 영어를 공부해왔고 영어를 실제 사용해볼 기회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 표현을 실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이해”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해”보다 훨씬 간단하다고 쉽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 반드시 정확한 문법적, 체계적 이해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문법적인 분석은 안 되더라도, 문맥이나 상황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도 있고, 잘 아는 사람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거나, 사전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표현 자체의 기본적인 의미만 파악이 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해가 불완전해 사용 중 실수하는 것은 언어 습득의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또, 정확한 의미나 문법사항이 제대로 “이해”가 안 된 것 같아 답답하게 느껴질 경우도 있지만, 이 표현과 그와 유사한 형태들을 여러 문맥에서 사용해 익숙해지면 답답하던 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영어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늘어가는 것이죠.

그리고 물론, 사용은 현재 자기 수준에 맞는 쉬운 부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현재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도 됩니다. 쉬운 것부터 익숙해지면 어렵던 것들도 쉽게 이해될 때가 반드시 오게 되기 때문이죠.

이것이 영어와 수학의 차이죠. 수학은 수학적 두뇌가 없으면 쉬운 문제를 아무리 많이 풀어 봐도 어려운 단계로 올라가는 데 한계가 그어지지만, 영어는 도구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쉬운 부분부터 자꾸 써보기만 하면 아무리 어려운 부분이라도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영어 공부가 젓가락 연습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 제가 가볍게 드리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영어가 훨씬 어렵게 생각되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해보지 않아서이지 영어 자체가 어려워서는 아닙니다. 영어를 수학처럼 공부하다 보니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한 것이죠.

따라서 위 1, 2번의 오해는 언어 현실에 맞게 다음과 같이 바로 잡아야 합니다:

3. 영어는 원칙적인 문법에서 벗어나는 부분들이 아주 많다.

    따라서 문법은 영어 공부의 시작일 따름이다.


4. 어려운 부분도 영어를 꾸준히 사용하며 익숙해지면 저절로 알아진다.


사실, 1, 2번의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영어에도 물론 법칙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문법과 영어에 대한 해설들은 영어의 많은 부분들을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학습에서 체계적인 비교, 분석, 정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영어의 전부로 알고 더 중요한 면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핵심은 언어의 법칙은 사실상 습관이요, 언어의 의미는 수학처럼 정확한 정의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상과 느낌들이라는 것, 습관이기 때문에 예외가 많고, 느낌이기 때문에 정확한 구분이 힘든 의미, 애매한 의미들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문법을 수학 공식처럼 절대시한다면 결국 좌절하게 되고 문법은 오히려 영어의 걸림돌이 되겠지만, 그 성격과 한계를 잘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문법은 영어라는 긴 여정의 친절한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들을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그 자체로 익혀간다고 해서 “티끌 모아 태산”입니다. 이를 통해 표현들의 다양한 의미와 상호 연관성이 깨달아지고 급기야 영어 전체에 대한 익숙함과 이해가 자리를 잡으면 영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태산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칼럼부터는 구체적인 예와 저의 경험담을 통해 이 방식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Hi, everyone!

오늘은 최근 저희 카페에 올라왔던 가정법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티끌공의 정신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예라고 생각이 됩니다.


가정법이라는 부분 있잖습니까? 시제를 한 단계씩 앞으로 당겨 쓰는 그 문법 사항이요.

'내가 만일' 이라는 노래 아시나요? 안치환씨의 노래인데,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하겠소.. 로 시작되는 거요.. 이거 어느 책에 보니까 영어로 번역을
Were I the sky, I would sing a song for you. 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그리고 설명하길 If I am the sky, I will sing a song for you. 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현재 사실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더군요.. 크게 어렵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하늘이 될 가능성은 희박
하니까요.. (중략)

그런데 말이죠.. 이런 거 있잖아요.. '만약에 오늘 무슨 일이 생기면 말야,' 라던가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말야' 이런 것들이요..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내가 대통령이 된 상태'가 아니니까 If anything happened, If I were the president 라고 써야 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고, 내가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정법을 쓸 필요가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중략) ... 선생님들의 조언 부탁 드립니다.


OO님, 좋은 질문 감사 드립니다.

가정법은 매우 어려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실 생활에서 표현해야할 의미들은 끝없이 다양하고 많은데 가정법은 그 형태가 과거, 현재, 미래, 등 몇 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몇 개 안 되는 도구로 그 다양한 의미들을 표현해 내야 하기 때문에 각 형태가 정말 “가랭이가 찢어질” 정도로 의미의 확장이 일어나는 것이죠. ^^ 이것이 어떤 때는 이해하기 아주 힘든 정도로 발전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영국인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You could have come today.

분명히 표준 문법에는 어긋나는 문장입니다. could have come은 원래 과거 사실의 반대를 말하는 가정법 과거형으로 (사실은 오지 않았는데) “올 수도 있었다”는 말이고, 또 이와 비슷하게 should have come은 (사실 오지 않았는데) “왔어야 했다”,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현재를 나타내는 today는 여기 맞지 않죠.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대화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인즉 이 today라는 날에 그녀 집을 방문하도록 초대를 받았으나 제가 사정상 다음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날 그녀를 어느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 이야기를 하다가 You could have come today (오늘 우리 집에 올 수도 있었잖아요) 이 말이 나온 것이죠.

분명히 방문을 하는 것은 오늘이므로 현재, 또는 미래의 일인데 왜 과거형을 썼을까요? 여기에는 어떤 가정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방문을 않기로 결정한 것은 과거 일이고 그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서 결국 방문하지 않는 것을 과거에 이미 일어난 사실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사실에 반대되는 가정법 과거를 쓴 것이죠. 그러니까 You can/could come today라고 해서 단순 가능성으로 말을 하면 집에 오라는 은근한 압력이 되니까 가정법 과거를 써서 집에 안 오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도를 암시한 것입니다.

이렇게 언어 현장의 실제 의미들은 복잡 다양하기 때문에 제한된 형태들은 최대한의 유연성을 가져야 하고 때로는 문법의 한계를 넘나들 정도로 스트레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원칙 없이 어떤 의미던지 주어 담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 원칙은 역시, 의미간의 상호 유사성입니다. 즉, 위의 경우에도 상황이 “과거 사실에 반대”라는 가정법 과거의 통상적인 의미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 형태를 쓸 수 있었던 것이죠. 사실 이것은 가정법만이 아니라 언어 전반에 걸친 현상입니다.

서론이 좀 길었네요. ^^ 가정법 미래는 말씀하신 대로 "가능성이 희박한" 미래를 말할 때 쓴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때 가정법을 써야 하느냐? "희박한 가능성"이란 대체 무엇이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 여기 해당이 되느냐 아니냐? 이런 것이 궁금하신 것이죠?

그런데 가정법 미래의 의미도 실생활에서는 정말 다양한 양상을 띄기 때문에 여기 어떤 고정된 의미, 혹은 정의가 있는데 여기에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식으로 따지게 되면 결국 언어를 수학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보다는 일단 사용례들을 통해 그 의미의 흐름을 좀 흡수해야 합니다. 가정법 미래는 동사의 과거형 (If the Earth stopped spinning...)과 were (to) 형 (If the Earth were to stop spinning...)이 있고 또 비슷한 의미로 should가 쓰이기도 합니다. (If the world should stop revolving spinning slowly down to die...) 마지막 문장은 좀 낮이 익네요... 맞습니다, 팝송 IF입니다. 이 중 were to 형을 보겠습니다.

다음은 Bank of English에 if+1,2were+to (if 뒤에 1~2단어를 사이에 두고 were와 to가 나오는 용례)로 검색한 예문 중 일부이고 6번은 Google입니다:

 

1.    And if you were to be killed in an accident, your family would have a considerable lump sum to fall back on.

 

2.    We must, of course, ask ourselves how long would our uranium resources last if we were to use nuclear power at this rate?

 

3.    What if you were to become far busier in September than you anticipated and have to take on additional staff?

 

4.    I would further add that if I were to become successful in gaining nomination to be a member of the Conference Arrangements ...

 

5.    If a women were to paint in this way today, she would receive heavy criticism.

 

6.    ~ if the Earth were to stop spinning, it would no longer have a gravitational pull.

 

 

자, 여기서 왜 were to가 쓰이는지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1번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좋지 않은 일, 2번은 현재 진행되고 있으나 바람직하지 않은 일, 3번도 가능하지만 예상을 넘어서는 일, 4번은 가능하지만 좀 어렵다고 보이는 일, 5번은 현재는 잘 없는 일, 6번은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입니다.

또, were의 예문은 이런 것이 있습니다: It would be a disaster if he were not re-elected (Collins).

자, 이런 다양한 의미들의 유사성이 느껴 지시나요? 2번 같은 경우 원자력을 이렇게 많이 (at this rate)쓰는 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인 만큼 “희박한 가능성”은 사실 아니지만 그래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점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작은” 일과 뭔가 유사성이 느껴지는 것이죠.

물론, 저는 이렇게 분석적인 설명을 하지만 유사성은 실제로는 즉각적인 느낌이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그러니까 제 설명은 머리로 이해를 하기 보다는 예문들을 떠올리며 were to의 의미들을 스스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는 “그럴 가능성은 작지만 그래도 ~한다면”, 혹은 “그래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한다면” 이런 느낌들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느낌과 친숙해지게 되면 조금이라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편하게 were to를 사용하면 됩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어렵게 생각된다던지,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던지, 사실은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던지, 불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던지, 어떤 이유에서건 느낌이 닿으면, 이것이 “희박한 가능성”이냐 아니냐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If I were to become president... 이렇게 해버리세요.

이제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시나요? 수학에서의 의미는 정의고 언어에서의 의미는 느낌입니다. 정의를 사용할 때는 정의의 내용에 일치하는가를 일일이 따져야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은 어떤 각도나 정도로든 유사성이 느껴지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되는 것이죠. 언어는 알고 보면 참 편하고 좋은 것입니다.


도움 말씀 감사합니다. 뭔가 딱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보다는 상황별로, 느낌별로 조금씩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두고 두고 읽어 보고 feel 을 받아야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참고: 코퍼스(Bank of English)는 방대한 네이티브 영어의 데이터베이스로서 다양한 검색어의 조합을 통해 영어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조회하고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학습 도구입니다. 곧 이 놀라운 인터넷 공짜 네이티브 개인교사를 여러분들께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2. 영어공부는 젓가락 연습일 뿐이다

 

전 칼럼에서 제가 주장한 영어공부가 젓가락 연습처럼 쉽다는 사실을 믿기가 힘드신 분들을 위해, 오늘은 올해 여덟 살 난 제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담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문법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문법 용어를 꺼냈다간 금방 싫증을 내고 도망을 가 버립니다. 그래서 바로 영어로 쉬운 말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I like apples. / I don’t like nuts. / Do you like apples?
I want to hug you. / Who wants cereal?
Where is your spoon?
This is (so, very) delicious.

이런 표현들을 일상 대화의 일부로 사용하고 그 뜻은 표정이나 동작, 혹은 한국어로 이해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필선이도 간단한 내용은 영어로 말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어디를 뛰어가고 있는데, 녀석이 느닷없이 Do you like running? 이렇게 물어오는 것이었어요. 생활 속에서 조금씩 쌓여왔던 영어가 드디어 독창적인 창조의 경지로 분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필선이는 의문문은 do가 앞에 오고, 동사 뒤에 목적어가 오는 규칙을 스스로 파악한 것입니다. 뜻만 가지고 간단한 문장들을 반복해서 듣고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죠. “그림”은 picture고 “그리다”는 draw니까 “그림 그리고 싶다”를 영어로 해보라고 하니 I want to draw picture라고 해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관사와 명사의 수는 이 단계에서는 정확하지 않지만요.

중요한 것은 이런 사용을 통한 깨달음이 일부 간단한 문장만이 아니라 언어 전체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표현들도 결국 간단한 규칙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규칙을 익힐 때와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죠.

I want to... 의 표현도 주어, 동사, 부정사를 설명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이 표현에 익숙해지면 “~하고 싶다”에는 I want to...가 그냥 한 덩어리로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특히, want to는 wanna로 발음이 되는데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것을 한 단어로 인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I want the apple, I would like to go, I hate to say, 등과 같은 표현을 접하다 보면 want와 to가 서로 독립된 단어로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이 또한 사용을 통한 깨달음입니다.

저도 잼있는 경험이 있습니다. get rid of은 “제거하다”를 의미하는 숙어로만 알고 있던 어느 날, 이와 유사한 표현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rid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라는 감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tired는 "지친 상태", get tired of~은 "~에 지친 상태가 되다", 마찬가지로 get rid of~도 “~이 없는 상태가 되다”. 그래서 I want to get rid of you 하면 "네가 없는 상태가 되고 싶어" -> "너를 제거하고 싶어" 이렇게 해석이 되는 것이죠.

숙어의 구조와 뉘앙스를 확실히 파악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be rid of의 형태도 가능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더군요. 제거하는 동작보다 없는 상태를 강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We will be rid of a very evil man (BE) 이렇게 하면 evil man을 누가 제거하는지는 확실치 않고, 단지 악인이 없어진 상태가 된다, 즉 "악인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말이 되는 것이죠.

 

 

얼마 전에는 필선이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었는데 책 제목에 관계대명사가 있었습니다:

The Kiwi who lost his mum

여기서 lost는 “잃어버렸다”, mum은 “엄마”라고 말해주자 마자 “엄마를 잃어버린 키위새”라고 바로 해석을 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이구 어이구 그래, 어떻게 알았어?” 관계대명사에 대한 설명 한 마디 없이도 뜻을 알아버린 것입니다.

 

사실 관계 대명사다, 관계 부사다, 이런 거창한 제목을 붙여놓고 문제를 괜히 어렵게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요? 절의 결합 공식을 따지고 격과 품사를 따지고 문장에 있을 것은 다 있는지 확인하고, 등등 너무 골치가 아픕니다.

1. the Kiwi who lost his mum → 주격 관계 대명사
2. the man (whom) I love → 목적격 관계 대명사
3. the day when I was born → 관계 부사
4. the place where the treasure is hidden → 관계 부사

그러나 이것들을 그 자체의 뜻만 놓고 보면 너무 쉬운 문장들입니다. 자, 보세요~

 

           1. 키위새 + 엄마를 잃어버리다 → 엄마를 잃어버린 키위새
           2. 남자 + 내가 사랑하다 → 내가 사랑하는 남자 
           3. 날 + 내가 태어나다 → 내가 태어난 날 
           4. 장소 + 보물이 숨겨지다 → 보물이 숨겨진 장소

 

뜻을 그냥 갖다 맞추면 바로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장애물을 걷어 치우고 필선이처럼 있는 그대로 소화해버린다면 관계사들을 오히려 더 간단하고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따라서 이런 표현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사용하는 것은 젓가락 연습보다 어렵지 않으며, 그 구조와 규칙이 깨달아져서 이것들을 요리조리 활용해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젓가락에 손이 숙달되어 점점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영어도 간단한 표현들에 익숙해지면 점점 더 복잡한 표현으로 가게 됩니다.

1.Do you know where the cards are?
2.Do you know where the book is that I bought yesterday?

먼저 문장들에 익숙해 있다면 이런 복문들도 어렵지 않게 소화됩니다. 예를 들어 1번은 Do you know... 가 “~을 알고 있니?”, 그리고 where the cards are가 “카드가 있는 곳”이라면 전체 의미가 “카드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니?”라는 것도 쉽게 짐작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익숙함의 범위가 영어 전체로 죽죽 뻗어 나가게 됩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제가 문법 무용론자는 아닙니다. 문법과 어휘 해설은 알고 있는 규칙들을 정리하고 더욱 어려운 단계들을 좀 더 원활히 소화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단지, 문법이 없으면 영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문법 지상주의가 얼마나 잘못되고 해로운 것인지, 그리고 먼저 사용해서 이해한다는 티끌공의 방식이 대체 무엇인지를 이해시켜 드리려고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영어와 젓가락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영어의 세계는 훨씬 깊고 방대해서 고수의 경지에 오르는데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합니다. 특히 관사는 것은 거의 평생을 통해 노력해야 할 과제이죠. 다만 사용을 통해 몸으로 익혀야 한다는 점에서 영어와 젓가락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젓가락 연습을 한참 더 오래 하는 게 티끌공 식 영어 공부라고 보면 되겠죠.

 

다행스러은 것은 중요한 사항일 수록 빨리 배워지고 배우기가 어렵고 애매한 것일 수록 의사 소통에는 큰 문제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관사도 일부의 경우만 빼고는 어떻게 써도 뜻 전달에는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경우는 관사의 원칙에 따라 비교적 쉽게 익힐 수가 있는 데 반해 후자의 경우는 오랜 사용을 통해서만 그 감이 다가오는 것이죠. 


영어와 젓가락, 이 오묘한 관계를 깨닫게 되면 여러분께 영어가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3. 문법의 포로가 되지 말자  

 

부정사와 5형식

고등학교 때 부정사의 용법에 관해 선생님과 씨름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We will also need some time to ask questions.

 

이 문장에서 to asktime을 수식하는 형용사적 용법인지 (질문할 시간) 아니면 need에 걸리는 부사적 용법인지 (질문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 명쾌하게 가릴 길이 없었던 것이죠. 그 때는 이런 문법적 분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네이티브들은 이런 구분을 의식하지 않고 이런 문장을 씁니다. 구분이 없이도 의미 전달에는 지장이 없죠.

 

I got something to tell you.
I came here to see you.

 

여기서 to tell you는 형용사적으로 “네게 말해줄”이고 to see you는 부사적으로 “널 보러”를 의미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부정사의 용법입니다. 이렇게 부정사는 영어 구조의 이해를 도와줍니다.

그러나 이런 용법의 구분이 수학 정의처럼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단지 부정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 또는 참고사항일 뿐이라는 것, 따라서 이런 구분이 잘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현재완료 용법들도 절대적인 의미 구분에 집착해선 안 된다고 설명 드린 <어휘사용 터득의 길> 시리즈가 기억이 되시나요?

그 다음은 5형식으로 가서, ”문법” 하면 제일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이 이 5형식입니다. 자, 그럼 아래 Bank of English의 문장은 몇 형식일까요?

 

He had waited 18 hours to meet his idol – and got an autograph.

 

어느 열성 팬이 18 시간을 기다려 자기의 우상을 만나 사인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18 hours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 같은데, for같은 전치사 없이 동사 뒤에 바로 왔기 때문에 waited목적어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어로도 “18 시간을 기다려”, 즉 목적격의 의미가 부여되네요. 그렇다고 실수로 for를 빼먹은 것도 아닙니다. 이런 식의 표현은 꽤나 즐겨 쓰이는 편이거든요:

 

a. I sleep five hours a night (BE).
b. He works part time as a janitor while going to school to learn the printing business (BE).
c. A driver walked four miles to a hospital after his car smashed into a house last night (BE).
d. Could you look this way? (Collins)

 

a는 “하루에 5시간 잔다”, b는 “파트 타임으로 일한다”, c는 “4 마일을 걸었다”, d는 “이 쪽을 보세용~”. 문제는 여기 있는 시간, 방식, 거리의 표현들이 동사의 동작을 수식해주는 것으로 보는 것과 동사의 목적어 노릇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 중 어느 쪽도 틀린다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음... 부사면 1형식이고 목적어면 3형식인뎅~ 이럴 때는 두문불출하고 부사와 목적어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기 위한 대대적인 탐구에 들어가야 할까요? 아니면 이제 애매모호성은 언어의 태생적 본질이라는 저의 변함없는 주장을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부사와 목적어도 매우 유용하지만 자연의 법칙이 아닌 인위적인 도구로서 그 적용의 한계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언제 네이티브들이 몇형식인지 몰라서 이런 문장을 사용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문법적인 정확한 이해를 고집하는 분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죠.

다음은 부사와 형용사의 문제입니다.

 

a. Your train is running late, we’ve found... (BE)
b. He eats healthy and aims to stay healthy (Google).
c. I want him to come back safe (BE).
d. Nothing comes easy (BE).

 

a에서 원래 late은 “늦다”로 형용사인데 부사처럼 동사에 달려 나옵니다. 그럼, running late은 기차가 “늦게 온다”일까요, 아니면 “늦는다”일까요? 그렇죠, 둘 다 맞습니다. 어느 쪽으로 봐도 의미 전달에는 지장이 없고, 결국 두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b도 부사적 의미 (eats healthily)와 형용사적 의미 (he is healthy)를 다 가지고 있고, c도 부사적인 come back safely에 형용사적인 I want him to be safe의 의미가 곁들여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d는 “어떤 것도 쉽게 오는 것은 없다”, 즉 모든 것은 노력을 요한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어떤 것도 쉬운 것은 없다” (Nothing is easy)라는 형용사의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봐 줘야겠죠.

문제 부분을 형용사로 보면 문장은 2형식이고, 부사로 보면 1형식입니다. 결국 5형식도 수학 공식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신축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는 문법을 통해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모든 영어 문장들을 우선 문법적으로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공부를 제대로 안 한 것 같고, “이해”가 잘 안 되는 표현이나 문장들은 자유롭게 사용하기가 주저되죠.

그러나 문법을 효과적으로 사용은 하되, 불필요하게 문법에 얽매인 포로가 되어 영어를 지옥 같은 감옥으로 만들지 말자는 것이 저의 호소입니다. 이럴 때는 네이티브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하면 됩니다. 문법적인 구분에는 신경을 딱 접어버리고 그 표현 자체의 내용만 대충 이해가 되면 주저 없이 사용
해 보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런 표현들에 익숙해지면 달콤한 “사용을 통한 이해”가 따르게 됩니다.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형용사와 부사의 의미가 겹쳐진 그 감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는 말씀이죠.

 

문법에 어긋난(?) 본토 영어

 

1. How about you come have dinner with me tonight? (Bank of English)
2. They were great fiddlers of long ago (British National Corpus).
3. All equipment and clothing should be cleaned after visiting wildlife sites (BE).
4. Flash memory can be built using two methods of wiring (BE).
5. Will the US go it alone? (BBC)
6. Don’t Marry Christmas me (Guiding Light).

 

좀 놀라지 않으셨나요? 전부 출처가 확실한 본토 영어인데 왜 이렇게 문법이 엉망들이람?

1번은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같이 하는 것이 어때?”라는 말입니다. 전치사 뒤에는 명사가 와야 하는데 about 뒤에 you로 시작하는 문장이 와 버렸습니다. 또 본동사 두 개 (come, have)가 연달아 왔고요. 세상에, 이런 문장도 있나요? 또, 2번, “먼 옛날의 위대한 바이얼린 연주자”에서 long ago는 “오래 전에”라는 부사인데 전치사 of 뒤에 덜컥 나왔네요.

3번은 주절의 주어는 equipment and clothing인데 visiting의 주어는 방문자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배운 주어 일치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래서 주어를 통일 시켜서 You should clean all equipments... after visiting... 이런 식으로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4번도 주절과 using의 주어가 다릅니다.

5번은 이라크 전이 발발하기 전 BBC 방송이 던진 질문입니다: “미국이 나홀로 공격을 감행할 것인가?” 그런데 go는 자동사인데 그 뒤에 따라 나오는 it은 여기서 대체 멀 하는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6번은 Guiding Light라는 미국의 TV 연속극 (soap opera)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뜻은 “내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지 마”인데 명사인 Marry Christmas가 이렇게 동사로 둔갑을 하는 법도 있나요?

그러나 문법에 어긋난 것 같은 이런 문장들을 네이티브들은 즐겨 사용하고 있고, 그 내용은 전달이나 이해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어떠세요, 문법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보면 대부분 뜻이 쉽게 들어오시죠? 그래서 이런 표현들을 접할 때 우리가 배운 문법에 맞지 않는다고 그 틀에 틀어 맞추려 하거나, 사용을 꺼리거나, 고민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그 자체의 의미를 음미해 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문장들을 알고 있는 문법의 틀에 억지로 맞추어 놓으면 자연스러움과 독특함을 잃어버린 문장이 됩니다. 1번에서 전치사 뒤에는 명사가 와야 하므로 How about your coming... 이렇게 동명사로 만들 수도 있지만 실제 코퍼스에 조회를 해 보면 이런 식의 문장은 거의 없고 전치사 뒤에 문장이 바로 오는 형태가 널리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come have를 “바로 잡기” 위해 come and have, come to have 등으로 쓰면 come have와 그 분위기가 같지 않습니다.

5번은 go alonedo it alone의 의미를 함축한 문장이라고 보아 지고, 3, 4번은 주절에서 수동태를 쓴 이유는 equipment and clothingclean하는 것이나 flash memorybuild하는 것이 불특정한 일반인에 해당되는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특정한 주어로 통일시켜 버리면 주어가 강조되고 일반성은 많이 약화됩니다.

물론, 정확한 문법은 중요합니다. 특히 어설프게 틀린 영어는 잘 가려 내어 학습에서 배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소 문법에 어긋나는 것 같더라도 네이티브들이 잘 쓰는 표현이 확실하다면 문제 삼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죠. 이럴 때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코퍼스입니다. 검색을 통해 어느 표현이 네이티브들이 쓰는 것인지, 또 얼마나 잘 쓰이는지를 확인시켜 줌은 물론, 이 표현을 익힐 수 있는 예문들을 무진장으로 선사합니다.

 

 

 

4. 저절로 깨닫는 영어: unless

 

이번에는 unless를 예로 삼아 영어의 느낌을 스스로 터득하는 길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스스로의 체험이 중요하므로 저의 설명을 개념적으로만 대하지 말고 이미지와 느낌을 적극적으로 떠올려가며 따라오세요~

unless는 좀 문제아입니다. if+not과 같은 의미라고 영한사전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그냥 if not을 쓰지 왜 unless를 또 만들어 언어를 복잡하게 한다는 말입니까?

I will be there if it doesn’t rain. 
I will be there unless it rains.

여기서 가정하는 것은 부정문인데 (it doesn’t rain) unless로 바꾸면 긍정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it rains) 문장의 감을 잡기가 불편하고, 또 간혹 unless 다음에 부정문이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unless+not = if not+not = if 뭐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라는 말인지, 무슨 수학 공식도 아니고... 아무튼 문제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unless는 제게 항상 불편한 단어였지만 영어에서는 아주 잘 쓰이기 때문에 저도 되도록 이 단어를 되도록 많이 사용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unless가 예외를 말하는 except (~의 경우를 제외하고) 와 느낌이 아주 가깝다는 감이 찌릿찌릿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즉, unless it rains는 “비가 올 경우를 제외하고” (except when it rains)와 같은 의미라는 것이죠. 그래서 전체 문장은 “갈께, 비가 올 경우는 제외하고”, 또는 비가 오지 않는 한 간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실이나 상황을 말하는 데 거기에 예외가 있을 때 “~의 경우를 제외하고”라는 뜻으로 unless를 쓴다는 것이죠. 이렇게 감을 잡고 보니 if not은 전혀 상관할 필요가 없고, unless를 사용하는 것이 아주 쉽고 편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Oxford 사전의 문장들을 해석해 볼까요?

1. I sleep with the window open unless it's really cold.
2. Unless something unexpected happens, I'll see you tomorrow.
3. You won't get paid for time off unless you have a doctor's note.
4. He hasn't got any hobbies--unless you call watching TV a hobby.


1. 창문을 열어놓고 잔답니다. 정말 추울 때를 빼고는요.
2.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낼 뵙겠습니다. → 예기치 못한 일이 없는 한
3. 휴가에 대한 급여는 없습니다, 의사의 진단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요.
4. 그는 취미 생활이 전혀 없다—TV 시청을 취미라고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 TV를 취미로 간주하지 않는 이상

unless를 이렇게 예외를 말하는 표현으로 이해를 하고 나니 그 의미에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절의 내용이 강조되는 경우와 예외가 강조되는 경우죠.

대표적으로, 2번은 주절 I will see you tomorrow가 강조돼서 “예기치 못한 일이 없는 한 내일 뵙겠습니다”로 해석이 됩니다. 반면 3번은 휴가 급여는 없지만 진단서가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예외가 강조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해석은 “휴가 급여는 없어요, 의사 진단서가 있으면 모르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강조가 어디에 들어가는가 하는 것은 내용 자체보다 말을 하는 상황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2번도 예외를 강조해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모르지만”, 즉 못 만날 지도 모른다는 말로 해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대개 unless의 절이 뒤에 오고 말할 때의 표정도 unless 절에 무게를 주게 되겠죠.

unless의 이런 독특한 기능을 알고 나니 왜 if not이 unless를 대체할 수 없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if not으로는 예외를 강조하는 말을 할 수가 없죠. 3번을 if not으로 바꿔보면:

You won't get paid for time off if you do not have a doctor's note.

“진단서가 없으면 휴가 급여를 못 받아요” 이것은 못 받는다는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주 사무적이죠. 그러나 원래 unless의 문장은 진단서가 있으면 휴가 급여를 받을 수도 있다, 결국 같은 말이지만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좀더 인간적인 뉘앙스를 풍긴다고 할까요?

또 Oxford 사전은 if not을 unless로 바꿀 수 없는 경우에 대해 말해줍니다:

Unless is used to talk about a situation that could happen, or something that could be true, in the future. If you know that something has not happened or that something is not true, use if...not: (unless미래에 가능한 일에 대해 쓴다.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일에 대해서는 잠자코 if not을 쓸 것)

이게 먼 말일까요? 사전이 제공하는 예문을 보세요.

If you weren't always in such a hurry (= but you are), your work would be much better.

“항상 서두르지 않는다면 작품이 훨 나을 텐데.” 괄호 안의 but you are는 “그런데 너는 항상 서둘러.” 즉, 서두르지 않는다는 if 절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고, 그래서 unless를 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알고 있는 사실과 반대되는 가정을 할 때는 unless를 쓸 수 없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당연하죠~ 예외라는 것은 예외가 생길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비가 올 가능성이 있을 때 “비가 올 경우를 제외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두르는 것이 확실해서 예외가 생길 가능성이 없다면 예외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다만 그것에 반대되는 가상적인 상황을 가정해볼 수는 있는 것입니다.

1. I sleep with the window open unless it's really cold.
2. I would sleep with the window open if it weren’t so cold.


이제 차이를 아시겠죠? 1번은 추울 가능성과 춥지 않을 가능성이 다 열려있고, 아주 춥지 않은 한 창문을 열고 잔다는 말입니다. 반면 2번은 가정법으로 현재 엄청 추운 것이 기정 사실이고 결국 추워서 창문을 못 연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는 unless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죠.

선생니임~ 영어는 쉽다고 하셨는데 설명이 왜 이렇게 길어지나욧!?

잠깐만요. unless의 느낌 자체는 간단합니다. 그것을 설명으로 전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죠. 자, 위의 예문들을 중얼중얼 하며 unless의 느낌들을 떠올려 보세요. 뭔가 “예외적인 가능성”을 나타내는 그 강렬한 느낌을요. 그래서 위의 가정법 문장에서 unless를 쓰려고 하면 거부반응이 오는 것도 직접 체험해보세요. 이렇게 하는 것은 이 문장들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집니다.

어렵지 않기 때문에 설명 없이도 단어를 계속 사용하다 보면 누구나 저절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설명이나 연구가 필요하다면 머리가 나쁜 네이티브들은 영어를 못할까요? 단어를 명확히 설명해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사용에 불편이 없을 정도의 이해는 누구나 쉽게 가능합니다.

사실 저는 unless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니 unless룰 자꾸 if not으로 분석하려는 것이 오히려 본래 느낌으로의 접근을 가로막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여 사용했다면 훨씬 빨리 깨우칠 수 있었겠죠.

영영사전도 도움이 됩니다. Collins는 unless를 예외를 말할 때 사용한다고 설명합니다: You use unless to introduce the only circumstances in which an event you are mentioning will not take place or in which a statement you are making is not true. 그러나 영영사전을 포함한 어떠한 설명도 언어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주지는 못합니다. 결국 스스로 사용하며 터득하는 것이 진짜입니다.

 

 

 

5. 저절로 깨닫는 영어: have+ever

 

I. 대충 이해하고 사용하기


This is the first time I have ever seen this woman
(Bank of English).

“이 여인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문장에서,
first time I see this woman이라고 안하고 왜 현재완료형 have를 쓰고 ever를 집어넣었을까요? have나 ever를 뺀 형태로도 자주 쓰이는데, 그러면 이 두 단어가 있어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도 영어의 어려운 부분의 하나입니다. have를 쓴 구문과 ever를 딱 부러지게 번역해낼 만한 우리 말이 없기 때문에 그 정확한 의미 파악이 어려운 것이죠. 이런 유형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분석을 하기도 합니다:

But it’s the most beautiful flower I’ve ever seen (BE).
→ .... most beautiful flower [among the flowers] I’ve ever seen.

flower 뒤에 among the flowers (꽃들 중에)가 생략이 되어 있고, I’ve ever seen은 “내가 여태까지 보아 온”, 즉 여태까지의 경험을 말하는 현재 완료형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럼 처음 문장도 이런 식으로, first time among the times I have ever seen this woman으로 분석이 될까요? 애석하게도 이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직역하면 “지금이 이 여인을 본 때들 중 첫 번째다”인데 “여인을 본 때들”이 있다면 지금이 첫 번째라고 할 수가 없죠. 그럼 대체 이 have ever라는 넘을 어떻게 소화를 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이럴 때 티끌공이 주장하는 것은 역시, 분석할 필요가 없다, 구문을 그냥 그 자체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분석이 정확히 안돼도 그 전반적인 뜻은 알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충분히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죠. 특히, ever는 정확한 의미를 꼬집어 내기가 좀 힘든 단어이지만 대충 눈치를 챌 수는 있습니다. 독자적인 뚜렷한 의미가 없다면 뭔가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겠죠. 이 문장의 핵심 내용은 first time, 즉 처음이라는 말이니까, ever는 first time을 강조한다는 정도의 짐작은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또, 주위의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수학적인 분석보다 이 단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죠. 그러면 have는 경험을 말하고 ever는 처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식의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정도 되면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용에 들어가세요. 어린 아이들도 다 이런 식으로 영어를 배웁니다. 정확히 아는 것도 있지만 뜻이 대충 짐작만 되는 것도 있고, 또 잘 모르는 표현은 부모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불완전하더라도 자꾸 듣고 말하면서 조금씩 이해를 높여가는 것이죠.

 

 

II. 경험을 말하는 have와 친해지기

이렇게 해서 이 표현과, 또 have와 ever가 들어간 다른 유사 표현들을 접하고 사용하다 보면 이 단어들에 대한 느낌이 연결되며 이해가 깊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I have seen her before (그녀를 전에 본 적[경험]이 있다)와 같은 표현들은 have의 “경험”의 의미 (느낌) 에 친숙해지게 해줍니다. 이렇게 되면, have가 들어가서 머가 달라지나 하는 것을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1. This is the first time I see this woman.
2. This is the first time I have seen this woman.


1번은 단순히 “이 여인을 처음 본다”가 되겠지만 2번은 경험의 측면을 강조하여 “그녀를 본 경험으로는 이 번이 처음이다” 이런 식의 뉘앙스 차이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1, 2번의 의미차는 그리 크진 않지만 1번은 단순히 현재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데 비해 2번은 과거로부터의 경험에 좀 더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first time (처음이다)과 I have seen this woman (본 적이 있다)이 서로 모순이라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는 수학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주세요. 언제나 정확하게 맞는 공식에 따라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사용하는 생활의 도구이기 때문에 적당히 느낌만 맞으면 단어들이 바로 연결이 됩니다.

자, 또 이런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아래 British National Corpus의 문장들을 음미해 볼까요?


1. I have been studying in Britain for a year, but this is the first time I have been inside a British home.

2. It's the first time I have taught at a university.

1. ... 영국 가정에 들어가 본 것은 (경험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2. 대학에서 가르쳐 본 것은 (경험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III. 부정을 말하는 ever와 친해지기


그렇다면 말괄량이 ever도 이런 식으로 친해질 수 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시나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Oxford 사전의 문장들을 보면:

I'll never ever do that again!  그거 다신 안 해, 절대로!
Nothing ever happens here.  여기는 전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아요.
She hardly ever (= almost never) goes out.  그녀는 거의 밖에 나가는 일이 없어요.

ever가 부정문에서 부정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네요. 실제 대화 중에는 ever에서 말하는 사람의 억양과 표정이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ever는 생긴 것도 never와 비슷하거니와 그 의미도 부정적인 의도가 따라다닌다는 것은 조금만 예문들을 접해보면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자 이 예문들에서 흡수한 느낌을 가지고 다음 두 문장을 보세요. 그 차이가 찌릿찌릿 다가오시나요? 안되시면 그 밑의 설명을 보기 전에 뒤로~ 돌앗! 위의 느낌들을 다시 한 번 몸으로 깊수~키 들이킨 다음 다시 겨눠~ 총!

1. Have you seen her?
2. Have you ever seen her?


아이고, 그렇습니다. 2번에는 부정적인 의도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1번은 단순히 봤냐고 물어보는 것임에 반해 2번에는 못봤을 것 같다는 암시가 섞여있는 것입니다 (may be you haven’t seen her). 바빠서 보기가 어려운 사람일 수도 있고, 또는 you가 그녀를 보기 힘든 상황에 있을 수도 있고 등등...  

이런 느낌을 가지고 처음 문장을 다시 대해 보면:

This is the first time I have ever seen this woman.

ever는 “그 여인을 전에 본 적이 없다"--본 적이 없으니까 first time을 강조하는 것이 맞죠. 그래서 have와 같이 전체 문장을 보면 "그녀를 전혀 본 경험이 없고 이번이 처음이다" 대충 이런 해석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이해가 조금 깊어진 것 같네요.

 

 

IV. Ever: 시간과 부정의 절묘한 결합

 

그러나 물론 이것이 다는 아니죠. 느낌의 깊이는 얼마든지 더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문장을 보세요: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Oxford).   그 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

 

아니, 어떻게 된 것일까요? ever의 부정의 의미는 흔적도 없고 지속되는 시간을 표현하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ever는 시간과 부정의 의미를 한몸에 지닌 신비한 단어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영사전에 나오는 ever의 첫번 의미가 at anytime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확하게는 "어떤 때라도 ~하지 않는다", 즉 부정을 내포한 시간인 것이죠. 이것을 이해하면 먼저 문장들의 더욱 정확한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I'll never ever do that again!   그거 다신 안 해, 어떤 때라도!

Have you ever seen her?   어떤 때라도 본 적이 있어요? ( 봤을 것 같아여)

This is the first time I have ever seen this woman.  어떤 때라도 본 경험이 없고...

 

자, 그런데 의미란 항상 정처없이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ever에서 부정은 사라지고 시간의 의미만 남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선, 다음을 보세요:

 

She is singing better than ever (Collins). 노래를 어느 때보다 잘 부른다 

It's my best ever score (Oxford).  어느 때보다 높은 최고의 성적 

 

여기서 ever는 "어느 때"를 말하지만 "어느 때도 이렇게 잘 부른 적이 없다", 또 "이렇게 성적이 좋은 적이 없다"는 부정적인 암시가 아직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문장들은 부정이 완죤 사라지고 "영원히", "항상"등 강한 긍정을 나타내게 됩니다: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Oxford).   그 후 영원히 (어느 때라도) 행복하게 살았다.

He said he would love her for ever (Oxford).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an ever-present danger (Oxford)  존하는 위험 / evergreen  록수


이렇게 해서 예문들을 통해 상호 연관성을 가진 다양한 ever의 의미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V. 스스로 깨닫는 공부

 

이렇게, have와 ever는 실 생활에서 수많은 의미로 쓰이는 다의어이고 그 의미들은 상호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유사성의 흐름을 따라 의미를 익혀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사용을 통해 그 의미, 혹은 느낌 속에 뛰어 들어야만 합니다.

 

위의 내용은 사용을 통한 자연적인 학습의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것을 제 나름대로 가정해 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언어 현장은 이렇게 필요한 예문들만 쏙쏙 골라다 주지는 않기 때문에 때로는 혼동을 겪을 수 있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어느 표현을 집중적으로 익히려면 유사한 예문들을 사전, 코퍼스, 등에서 찾아서 실제 상황을 가정하고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혼자 중얼중얼 해도 좋고 글로 써도 좋고 또 듣거나 읽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표현을 사용하며 실제 상황의 느낌을 그대로 체험해 보도록 노력하는 것이죠. 문법을 따지다 보면 실제 말을 할 때 더듬거리기 일쑤이지만 이렇게 느낌을 통해 익힌 표현들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순발력 있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언어를 정말 언어답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누가 좋은 예문들과 설명을 가지고 정리해 준다면 편하겠지만 방대한 영어의 모든 것을 누구에게 의존해서 배울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는 법을 터득해야죠. 언어를 자꾸 접하고 사용하다 보면 위에서 설명드린 식의 유사성의 흐름과 정확한 의미가 느낌으로 깨달아집니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논리적으로 파고드는 것보다 그것에 관계된 예문들을 자꾸 사용하고 익히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공부이죠.

 

우리 나라에는 영어 전문가들이 많고 영어의 비법과 비장의 공식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이것이 영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못한다는 지적 주종관계의 악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깨우치는 참다운 배움의 싹이 빛을 보지 못하고 시들어간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