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13일, 美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LA 레이커스와 경기한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종료
직전 귀중한 자유투를 실패하면서 팀의 99-98 패배를 씁쓸히 지켜봐야 했다. 며칠 뒤 포틀랜드 블레이저스와의 원정경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르브론은 결정적인 순간, 집중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며 자유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운명을 바꾼
자유투
NBA 팬들은 자유투가 응원하는 팀의 운명을 얼마나 많이 바꾸어왔는지 눈으로 확인해왔다. 95년 NBA 파이널 1차전에서
닉 앤더슨(올랜도 매직)이 마지막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켰더라면? 칼 말론(유타 재즈)이 시카고 불스와의 파이널에서 마지막 자유투를 성공시켰다면?
결정적일 때 주어진 자유투들은 슈퍼스타들의 희비를 갈라놓았을 뿐 아니라 역사까지 바꿔놓았다.
자유투가 농구경기에서 시도된 것은
1890년대 후반이었다. 파울이 일어났을 때 단순히 공격권만 양도하던 기존 규칙이 강도가 약하다는 판단 아래, 한 골에 1점씩을 주는 자유투
제도가 도입되었고 美 코치협회 자료에 따르면 최초로 경기 중에 자유투를 성공시킨 선수는 1896년 아마추어 농구 팀이었던 브룩클린 YMCA의
시몬슨(Simonson)이라는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시몬슨은 16-1로 패한 경기에서 1점을 자유투로 해결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자유투는 선수들이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관련 규칙도 그 맥락을 거듭해갔다. NBA도 윌트 채임벌린이 너무 쉽게 자유투를
성공시키자 페인트-존을 12피트에서 16피트로 확장시키기도 했고, 많은 팀들이 자유투 성공률이 낮은 샤킬 오닐에게 고의적으로 파울을 하자 경기
막판, 공을 갖고 있지 않은 선수에게 파울을 한 선수에게 테크니컬 파울을 적용시키는 등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해왔다.
자유투는 지루함의 상징
초창기 NBA무대에서 자유투는 ‘지루함의 상징’과도 같았다. 1953년 3월21일
보스턴과 시라큐스간의 경기는 4차 연장 끝에 111-105로 보스턴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오늘날 피닉스 선즈가 보여주고 있는 가공할 만한 3차
연장 접전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4차 연장’을 명승부 정도로 기억할 지 모르지만 경기를 지켜본, 혹은 심지어는 경기를 치른 선수들조차도 초창기
연장 경기를 졸전으로 생각한다.
24초 제도가 없던 시절, 상대로부터 공격권을 빼앗는 ‘정당한’ 방법은 수비를 성공하거나, 상대가
득점을 올렸을 경우뿐이었다. 따라서 공격 팀은 마냥 공을 돌리기 일쑤였고, 상대는 그런 공격 팀에게 고의적으로 파울을 해서 자유투를 던지게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야 공격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53년 보스턴-시라큐스 전에서는 이런 식으로 꾸준히 파울이
쏟아졌고, 밥 쿠지는 자신의 50득점 중 무려 30점을 자유투로 해결해야 했다. 49년 뉴욕-볼티모어 전에서도 파울이 무려 100개나 나왔고,
11명이 퇴장 당했으며 118개의 자유투가 시도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한 쿼터(12분)이 40분까지 소요될 때도 있어 관중들이 경기를 보다가
졸거나 집에 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자유투 성공률은 어땠을까. 선수들의 자유투 성공률도 초창기에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다. 원년
46~47시즌 자유투 성공률 1위는 81.1%(프레드 스콜라리, 워싱턴)에 불과했고, 80%를 넘는 선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는 원
핸드 세트 슛(One-hand Set Shot)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혹자는 농구공의 질(quality)도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을 문제 삼았다.
최초로 90%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한 선수가 등장한 것은 50년대였다. 로체스터 로열스의 바비
웬저(Bob Wanzer)가 그 주인공으로 90.4%로 1위에 올랐다. 당시 로체스터는 자유투 성공률이 전반적으로 우수했는데, 이는 로체스터가
한 시즌 최다 연장전을 치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후에는 빌 셔먼(보스턴 셀틱스)가 무려 5년 연속 1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10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자유투 킹’으로 군림했다. 셔먼은 자유투 성공률 뿐 아니라 자유투를 얻어내는 데도 유능했던 선수였다.
자유투의
황제들
역대 한 시즌 최고 성공률은 95.8%로 80-81시즌의 캘빈 머피가 보유하고 있다.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이기도 한
머피는 키가170cm를 조금 넘길 정도에 불과했지만 한 경기에서 42득점을 폭발시키는 등 오늘날 얼 보이킨스, 타이론 보그스, 스퍼드 웹 등을
능가하는 최고의 단신 선수로 역사에 남아있다. 그는 현역 시절 두 차례 자유투 성공률 부문 1위를 달렸고, 그 외에도 여덟 번이나 상위5걸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침착한 선수로 여겨졌다.
그 외 대부분의 자유투 킹들은 가드들이다. 마이클 윌리엄스(전 미네소타), 레지
밀러(전 인디애나), 매머드 압둘-라웁(전 덴버), 릭 베리(전 골든 스테이트) 등은 90%를 손쉽게 넘겼던 선수들이고, 이는 NBA 역사상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90%를 넘기는 유일한 선수인 마크 프라이스(전 클리블랜드)도 마찬가지다. 프라이스는 정규시즌 90.4%, 플레이오프
94.4%의 놀라운 성공률을 보유하고 있는 역대 최고 포인트가드 중 하나로, 90년 3월28일 시카고 불스 전에서는 20개의 자유투를 얻어 이
중 18개를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자유투 시도/성공 부문은 어떠할까. 이 부문에서는 대단히 재미있는 양상을 보인다.
시도 부문에서는 빅 맨들이, 성공 부문에서는 가드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 자유투 시도 역대 5위 중 네 명(카림 압둘-자바, 모지스
말론, 윌트 채임벌린, 샤킬 오닐)이 센터지만, 그 중 성공 부문에서도 상위 5위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압둘-자바 뿐이다. 그 외는 저조한
성공률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특히 자유투 전담 코치까지 둬야 했던 샤크는 말할 것도 없다.
장신과 자유투
흔히들 장신들은 70~75%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해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오늘날 등장한 덕 노비츠키, 케빈 가넷 등
센터급 신장을 지닌 선수들은 탁월한 슛 감각을 자랑하지만 아무래도 섬세함이 떨어지는 센터들에게 가드와 같은 자유투를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투 시도와 성공 부문에서 동시에 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압둘-자바는 77-78시즌에 78%를 기록하는 등
통산 성공률이 72.1%로 준수한 편이다. 채임벌린이 46.5%, 오닐이 53%임을 감안해보면 말이다. ‘NBA 최초의 스타 센터’ 조지 마이칸
역시 정규시즌에는 78%, 플레이오프에서는 79%로 우수했다. 특히 초창기 NBA 자유투 성공률이 80% 초반이면 A+급이었던 점도 고려해보면
상대 팀이 왜 마이칸을 상대하는 것을 두려워 했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205cm의 래리 버드는 빅 맨은 아니지만, 자유투에서도
탁월한 슛 감각을 자랑했다.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88.6%로 우수했던 그는 네 번이나 90%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한편, 머피가
역대 최단신 자유투 성공률 1위 선수라면, 잭 시크마는 역대 최장신 자유투 성공률 1위 선수다. 시애틀과 밀워키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리바운드가 뛰어났던 213cm의 장신센터(통산 9.8개)로 87-88시즌에 92.2%로 이 부문 정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렇다면
NBA 최악의 자유투 슈터는 누구일까. 채임벌린이나 오닐 만큼이나 자유투로 감독 속을 썩인 선수는 많다. 크리스 더들리(은퇴)는 30%대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형편없었고, 데니스 로드맨(은퇴), 에릭 댐피어, 에릭 먼트로스(은퇴)도 마찬가지였다.
자유투로 보내는 메시지
더 나아가 시도와 성공을 떠나 자유투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인물도 있다.
스티브 내쉬(피닉스)는 자유투를 던질 때마다 손에 침을 바르는 습관을 갖고 있고, 제이슨 키드(뉴저지)와 제프 호너섹(전 유타)은 던지기 전에
가족들에게 자신만의 제스쳐로 인사를 보냈다. 칼 말론(전 유타) 역시 중얼거리는 버릇을 갖고 있어 기자들에게 자주 질문을 받았으나 끝내 자세한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포즈나 준비 과정이 독특한 선수들도 있다. 닉 반 엑셀(샌안토니오)은 보통 자유투라인 보다 조금 더
물러서서 던지며, 제리 스택하우스(댈러스)는 엉거주춤한 포즈에서부터 자유투를 던지는 것이 특징이다. 역대 최고의 자유투 슈터 중 한 명이자, 존
베리와 브렌트 베리의 아버지이기도 한 릭 베리는 두 손으로 아래서부터 던지는 슛 폼으로 유명했다. 이는 90년대 일본과 한국을 휩쓸었던 만화
‘슬램덩크’에서도 등장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 역대 최다 자유투 성공 선수 (통산)
1. 칼 말론 (9,787개)
2. 카림 압둘-자바 (8,531)
3. 오스카 로버트슨 (7,694)
4. 마이클 조던 (7,327)
5. 제리
웨스트 (7,160)
* 역대 최다 자유투 시도 선수 (통산)
1. 칼 말론 (13,188)
2.
윌트 채임벌린 (11,862)
3. 모지스 말론 (11,090)
4. 카림 압둘-자바 (9,304)
5. 샤킬 오닐
(9,273)
* 역대 자유투 성공률 순위 (통산)
1. 마크 프라이스 (90.4%)
2. 릭
베리 (89.3%)
3. 스티브 내쉬 (89.2%) - 현역 선수
4. 캘빈 머피 (89.2%)
5. 페자 스토야코비치^
(89.0%)
6. 스캇 스카일스 (88.9%)
7. 레지 밀러 (88.8%)
8. 래리 버드 (88.6%)
9.
레이 알렌^ (88.4%)
10. 빌 셔먼 (88.3%)
* 한 경기 최다 자유투 성공 선수
1. 윌트 채임벌린 (62년, 28개), 에드리언
덴틀리 (84년 28개)
2. 에드리언 덴틀리 (83년, 27개)
3. 에드리언 덴틀리 (80년, 26개), 마이클 조던
(87년, 26개)
* 역대 경기당 최저 자유투 성공 팀
평균 팀 시즌 합계
14.3 피닉스 05-06 543/38경기
14.9 보스턴 98-99 745/50경기
15.0 밴쿠버 96-97 1,230/82경기
15.1 마이애미 01-02 1,236/82경기
* 역대 경기당 최저 자유투 시도 팀
평균 팀 시즌 합계
18.0 피닉스 05-06 684/38경기
19.8 뉴욕 02-03 1,620/82경기
19.9 피닉스 01-02 1,630/82경기
20.1 토론토 03-04 1,650/82경기
* 자유투 관련 규정 주요변화
50-51 시즌
경기 마지막 3분간은 자유투 성공시, 파울을 범한 팀에게 공격권을 주지 않고
파울을 한 선수와 파울을 당한 선수가 점프볼을 한다. 이 규정은 공격권을 빼앗기 위해 범하는 고의적이고 거친 파울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장신자가 단신자에게 상습적으로 파울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52-53시즌부터는 자유투를 던진 사람과 그 선수를 수비하던 사람이 점프볼을
하는 것으로 제도를 보완했다.
54-55 시즌
백코트에서 이뤄진 파울에 대한 벌칙이 자유투 두 개로 바뀌었다.
팀파울에 걸려있으면 3번의 기회중 2개를 성공시킬 수 있다. (one-and-one free throw rule)
80-81 시즌
고의적인 파울시 파울당한 팀의 감독이 자유투 던질 선수를
결정한다.
81-82 시즌
첫 번째 일리걸 디펜스 바이얼레이션 이후
공격시간은 24초로 복원된다. 그 이후 일어나는 부정수비 바이얼레이션에 대해서는 자유투 한 개와 공격권을 부여한다. 각 쿼터나 연장전 마지막
24초에 일리걸 디펜스 바이얼레이션이 일어날 경우 자유투 한 개가 주어진다. 그리고 자유투 3개 중 2개를 넣고, 2개 중 하나를 넣을 수 있는
제도가 폐지됐다.
90-91 시즌
고의적인 (혹은 악의적인) 파울에 대한 벌칙이 자유투 두 개와 공격권으로
강화되었다. 공을 수비하기 위한 노력이 없거나 파울의 강도가 심하여 부상이 우려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심판은 그 선수를 퇴장시킬 수 있다. 퇴장
당한 선수는 자동적으로 250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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