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my life!/I Love This Game

스퍼스의 전설.. 데이비드 로빈슨

JJun ™ 2006. 2. 4. 00:19
 

오늘은 색다르게 퀴즈로 글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시면 답을 맞출수 있는 쉬운 문제입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1)1979-80시즌 이후, 루키로써 전년 대비 팀에 가장 많은 승수를 더해준 세 사람은?

(2)1979-80시즌 이후, 커리어를 시작한 후 첫 6년간 우승을 제외한 NBA의 모든 주요 타이틀을 차지한 유일한 센터는?(신인왕, MVP, 올해의 수비왕, 올 NBA 1ST팀, 올 수비 1ST팀)

(3)NBA역사상 두명밖에 없는 득점왕, 리바운드왕, 블록왕을 모두 차지한 경험이 있는 선수 두명은?

(4)90년대 4대 센터중 은퇴할때까지 한번도 팀을 옮기지 않은 유일한 선수는?


▶답은 다들 아실테니 따로 쓰지 않겠습니다.^^;;

프로 스포츠에 뛰어든 선수들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일까요? 유명해지는것? 천문학적인 부? 개인적인 성취감? 선수들마다 어느정도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목표는 역시 우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승=돈, 우승=인기 라는 공식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승경험이 있는 선수에게 개인적인 성취감이 훨씬 높은 것만은 사실이겠죠.

칼 말론이나 게리 페이튼이 주위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레이커스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한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들의 파격적인 조건 자체가 연봉으로 환산할수 없는 우승의 가치만큼이었겠죠.

그리고 선수로써 가장 멋있는 순간은 우승하는 그 순간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정상에서 아름답게 은퇴하는것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누구라도 바라 마지 않지만 절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니까요. 노쇠화로 인해 약해지는 체력과 그에 더하여 찾아오는 부상,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인들...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적인 선수들 중에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한 선수가 몇이나 됩니까?

물론 자신의 문제나 팀 사정에 의해 조기은퇴해야하는 일이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는 은퇴하고 싶지만 팀 전력상 빠지기 힘든 경우가 있을 수 있겠죠.

마이클 조던 역시 최고의 자리에서 '더 샷2'를 마지막으로 은퇴할 수 있었으나 그의 농구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리그에서 그의 복귀를 바랬기에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복귀하여 우승도 아닌 플레이오프를 노리고 뛰어야 했습니다.

농구팬들은 무관의 제왕으로 쓸쓸히 은퇴하는 선수들과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초라한 말년을 보여주는 선수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에 정상에서 은퇴하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위에 낸 네 문제의 공통된 답이 되는 한명의 선수이며,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하는 크나큰 행운을 누린 선수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스퍼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데이비드 로빈슨입니다.

1987 드래프트에서 1위로 지명된 로빈슨은, 잘 아시다시피 해군복무 2년을 마치고 89-90시즌이 되어서야 스퍼스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의 해군사관학교시절 기록을 보면, 그가 얼마나 괴물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작 372분을 뛴 신입생 시절을 제외하고 그는 4학년때까지 매 시즌을 주전으로 뛰면서 대학 4년간 2669점-1314리바운드-516(!)블록슛-158스틸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 모든 기록이 단지 127게임만에 얻어진 것이라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군요. 게다가 필드골 성공률은 61.3%, 3점슛 성공률은 100%입니다.(1-1 이군요^^;;)

그는 스퍼스에 합류하자마자 주전 센터 자리를 차지하였고 전년대비 +35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팀에 선사합니다. 단번에 플옵에 진출한 스퍼스는 덴버를 평균 12점차로 가볍게 스윕하고 드렉슬러를 중심으로 전성기를 보내던 포틀랜드와 만나게 됩니다. 7차전까지 가는 승부끝에 스퍼스는 105-108로 아깝게 패하였지만 앞으로 팀을 이끌어갈 기둥, 로빈슨의 합류는 팬들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습니다.

다음시즌, 로빈슨은 평균 13리바운드로 리바운드왕을 차지하면서 팀을 디비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플옵에서 런TMC의 워리어스에게 발목을 잡히게 됩니다. 1차전을 130-121로 가볍게 이겼지만 이후 3게임을 내리 지면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워리어스도 그해 파이널에 올라간 레이커스에게 4-1로 패하고 말았죠)

91-92시즌, 로빈슨은 총 305블록, 평균 4.5블록슛으로 블록슛왕을 차지하였고, 올해의 수비수가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팀은 전년도에 약간 못미치는 47승의 성적으로 디비젼 2위를 차지하였고, 호너섹-KJ-멀리가 이끄는 피닉스와 1라운드에서 격돌하였습니다. 막강한 백코트로 무장한 53승의 피닉스는 상대적으로 골밑이 매우 취약한 팀이었지만, (당시의 리바운드 리더는 팀 페리로 6.9리바운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로빈슨이 부상으로

빠진 스퍼스를 평균 9점차로 스윕하며 2라운드에 진출하였습니다. 그만큼 로빈슨이 골밑에서 팀에 주었던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죠. (그리고 로빈슨은 NBA역사상 세번째로 5개 카테고리에서 10위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남겼기에 더 안타까웠습니다. 득점, 블록, 리바운드, 스틸, 필드골 성공률의 5카테고리였죠, 당시까지 클리프 헤이건과 래리 버드만이 달성한 기록이었습니다)

드림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딴 로빈슨은, 92-93시즌을 건강하게 출발합니다. 82게임 전 경기를 출장하며 당시 팀 기록인 3211분을 뛴 철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올스타전에 선발로 출장하여 21-10의 더블더블을 기록합니다. 49승으로 시즌을 마치고 플옵에 돌입한 스퍼스는 포틀랜드를 상대로 3-1의 승리를 거두고 2라운드에 진출하지만, 상대는 리그 전체 승률 1위팀, 바클리가 가세한 피닉스였습니다. 적지에서 2연패후 홈에서 2연승하며 반전을 노렸지만 이후 두경기를 모두 내주면서 4-2로 스퍼스는 패했고 피닉스는 이후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93-94 시즌, 로빈슨의 새 파트너로 배드 보이즈의 일원이었던 리바운드의 제왕 데니스 로드맨이 합류하게 됩니다. 깔끔한 매너의 로빈슨이 이끌던 스퍼스에 터프한 악동 로드맨의 궁합이 어울릴까 하는 의문이 많았지만 로드맨은 무려 17.3리바운드, 특히 공격 리바운드를 평균 5.7개나 잡아주면서 로빈슨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로빈슨은 맘껏 자신의 창조적인 기량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로빈슨은 이 해에 평균 29.8득점으로 오닐을 제치고 득점왕이 되었고, 4.8어시스트를 기록하여 '포인트 센터'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로드맨의 친정팀인 피스톤즈를 상대로 사상 4번째 쿼드러플 더블을 기록하게 됩니다.(34점-10리바-10도움-10블록)55승으로 플옵에 진출한 스퍼스는 같은 디비젼 경쟁자인 유타 재즈와 1라운드 다툼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유타의 픽&롤 콤비는 3차전의 33점차 대승을 포함, 1차전의 106-89 패배를 제외하고는 스퍼스를 평균 20점차로 대파했습니다. 득점왕인 로빈슨의 득점력은 정규시즌때보다 10점이나 하락했으며, 두자리수 득점을 올려준 동료는 데일 엘리스가 유일했습니다. 그리고 로빈슨은 팀의 기둥으로써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94-95시즌은 스퍼스 팬들에게는 뜻깊은 시즌이 되었습니다. 이 시즌의 스퍼스는 로빈슨과 션 엘리엇, 리바운더 데니스 로드맨이 건재했고, 민첩한 동시에 귀여운 얼굴이 인상적인 에이브리 존슨과 백인 슈터 비니 델 네그로의 베스트5에 저격수 척 퍼슨까지 굉장히 짜임새 있는 팀이었습니다. 스퍼스는 62승을 거두며 리그 최고 승률팀이 되었고 로빈슨은 MVP를 수상합니다. 그리고 플옵에서 덴버를 스윕하고 레이커스를 6게임만에 제압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년도 우승팀 휴스턴과의 서부 결승을 맞이하게 됩니다.

로빈슨에게 MVP를 넘겨준것에 대해 불타올랐는지, 전년도 MVP였던 올라주원은 언터처블이었습니다. 시리즈에서 로빈슨의 기록은 훌륭했습니다. 23.8득점-11.3리바-2.17블록이라는 성적은 어디내놔도 빠질것 없는 좋은 성적이었지만. 이 씨리즈에서만은 빛이 바래고 말았습니다. 상대인 올라주원은 35.3득점-12.5리바-4.17블록이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로빈슨을 압도하였습니다. 6게임만에 스퍼스는 패했고 휴스턴은 결승에 올라가 백투백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빈슨은 역시 맹비난을 감수해야 하였죠.

다음 시즌, 로드맨은 로빈슨은 승리자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며 악담을 퍼부었고 불스의 센터 윌 퍼듀와 트레이드됩니다. 평균17개의 리바운드와 수비를 책임져주던 로드맨의 공백은 컸지만, 팀 분위기를 해치는 그를 처리할수 밖에 없었던 거죠. 그러나 그만큼 로빈슨의 부담은 늘어났습니다. 팀은 59승을 올리며 플옵 2라운드까지 진출하지만, 무르익은 유타의 픽&롤 콤비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고 무리한 플레이의 여파로 로빈슨은 등부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로빈슨은 부상으로 단 6게임밖에 뛰지 못하였고 그의 자리를 메꿀 인사이더는 스퍼스에 없었습니다. 노장 도미니크 윌킨스가 팀내 득점 1위를 차지할만큼 빈약한 전력으로 스퍼스는 전년도 59승의 팀이 단 20승밖에 올리지 못하는 암울한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스퍼스에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저조한 성적으로 높은 드래프트 순위를 받는 것이었는데요, 1번픽을 얻게 된 스퍼스는 최대어였던 팀 덩컨을 드래프트하게 됩니다. 드디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게 된 것이죠.

전년 시즌 중간에 바뀐 감독 그렉 포포비치는 로빈슨-덩컨의 트윈타워를 잘 이끌어주었고 97-98시즌 스퍼스는, +36승으로 56승을 일궈내며 단숨에 예전의 위용을 되찾게 됩니다. 예전의 스피드나 체력을 완전히 회복한 로빈슨은 아니었지만, 로빈슨과 덩컨은 42점-22리바-6도움-5블록을 합작하며 공포의 골밑을 구축하였습니다. 피닉스를 4게임만에 이기고 플옵 2라운드에 진출한 스퍼스는, 다시 픽&롤 콤비의 재즈와 맞붙게 되는데요, 급조된 트윈타워는 픽&롤 콤비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5게임만에 재즈는 스퍼스를 제압하였고 다시금 NBA결승까지 진출하게 되죠.

로빈슨은 한해 더 늙었지만 트윈타워의 경기력은 더욱 원숙해진 98-99시즌, 팀은 상대팀을 리그 최저 필드골 성공률로 묶으며 37승을 올리고 디비젼 우승을 차지합니다. 1라운드에서 케빈 가넷의 미네소타를 3-1로 간단히 제압하고 레이커스를 4-0으로 스윕, 서부결승에서 포틀랜드를 연속으로 스윕합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결승전에 진출한 스퍼스는, 최초의 8번 진출팀 닉스를 맞아 4-1로 승리하며 감격의 우승을 맞이합니다. 기나긴 시간동안 무관의 제왕이었던 로빈슨에게 반지가 돌아가는 순간이었으며 그간의 비난들이 눈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덩컨의 기량이 일취월장하는만큼 로빈슨의 노쇠화도 한해 한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로빈슨은 덩컨의 훌륭한 조력자로써, 스퍼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써 제 몫을 다해주었습니다. 00-01 시즌에는 덩컨의 부상으로 1라운드에서 탈락하였지만 01-02시즌에는 다시금 서부 결승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스퍼스는 오닐&코비의 레이커스에 가려지긴 했지만 항상 50승 이상을 올리는 강팀이었죠.

02-03시즌, 로빈슨은 이제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팬들은 그와의 마지막 시즌을 맞게 되었습니다. 로빈슨은 주전이었지만 어느새 한자리수 득점을 기록하게 되었고 기량도 예전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묵묵히 팀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고 잔부상에 시달리면서도 64게임에 출장해 주었습니다. 스퍼스는 다시금 60승 시즌을 치뤄냈고 플옵에서 피닉스. 레이커스, 댈러스를 줄줄이 4-2로 격파하고 다시 결승에 진출합니다. 네츠마저 4-2로 꺾은 스퍼스는, 로빈슨에게 은퇴를 장식하는 우승반지를 선물하는 감격적인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4대 센터의 장점만을 모은다면 아마 해답은 로빈슨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다재다능한 선수 그 자체였습니다. 7-1의 장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스피드를 보유했던 그는, 리바운드와 동시에 풀스피드로 코트를 가로지르는 놀라운 민첩함을 보여주었으며 센터로써 속공의 마무리를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왼손에서 날아가는 그의 타점높고 부드러운 점퍼는 우아함 그 자체였죠. 로빈슨의 슛거리는 3점라인 밖까지 사정권이었고 그의 폭발적인 덩크는 샤크의 그것과는 또 다른 박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력적인 블록슛은 슬램덩크의 채치수, 바로 그 모습이었죠.

그는 코트에서의 폭발적인 플레이와는 달리 사생활에서 아주 조용하고 깨끗한 매너로도 알려져 있죠. 비록 킬러 본능을 갖추지 못했고 큰 경기에 약하다는 비난이 쏟아질때에도 그는 조용히 팀을 위해 뛸 뿐, 절대 변명하거나 맞받아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빅 마켓이 아닌 샌안토니오라는 조그만 도시에 충성을 바쳤고 한번도 팀을 옮긴적이 없었습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9백만 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샌안토니오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쓰기도 했다죠.

그런 그에게 팀 덩컨은 어쩌면 최고의 수제자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NBA에서 알아주는 순둥이인 팀 덩컨은 그를 바라보며 리그를 배웠으며, 로빈슨에 의해 샌안토니오에 남아있게되었습니다. 덩컨의 존재로 인해, 스퍼스를 항상 우승을 노리는 최강팀으로 만든것도 역시 로빈슨의 공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당장 올시즌도 우승후보 영순위로 꼽히는 팀이 스퍼스인것은 말할 필요도 없구요.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로빈슨은 두차례의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정상의 자리에서 아름답게 은퇴하는 하늘의 축복을 받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잇고 있는 팀 덩컨은 가장 그를 닮은 선수이기도 하구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요. 바로 로빈슨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하늘이 내린 신체와 재능을 낭비하지 않고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에게 말이죠.

부와 명예를 위해 쉽게 소속을 옮기는 선수나 그런 선수를 사모으려는 구단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프로는 비즈니스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던것 처럼요. 하지만 그럴수록 로빈슨처럼 한결같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가치는 더욱 빛나는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코트에서 그의 모습을 볼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덩컨이 코트를 떠나는 그날, 그의 져지가 스퍼스의 50번 져지 옆에 걸리길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군요.

Thanks for the great memories, admiral,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