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에서 어느 팀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대답들이 나오겠지만, NBA 최고의 명문팀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대체로 비슷한 답들이 나올거라
생각합니다. 21세기를 우승으로 시작하였으며 통산 승률이 60%를 넘는 전통의 명가 LA레이커스를 첫손 꼽을 수 있겠고 NBA통산 최다
우승팀이며 기라성같은 스타들이 스쳐갔던 보스턴 셀틱스를 들 수 있겠습니다.
셀틱스는 BAA 시절이었던 1947년부터 2004년까지
60년에 가까운 역사속에서 단 14번을 빼고는 내내 플옵에 진출한 강팀이었으며 최근의 1996~2001년까지의 6년연속 플옵진출 실패가 가장 긴
암흑기일만큼 거의 모든 시대속에서 강자의 이미지를 가진 팀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우승을 맛본 빌 러셀과 밥 쿠지의
50년대말~60년대, 하블리첵과 데이브 코웬스의 70년대, 빅3의 위용을 자랑했던 80년대에 이르기까지 NBA에 입성한 1950년 이래
90년대를 제외한 모든 시대에 걸쳐 우승을 맛본 최강의 프랜차이즈이기도 하죠.
셀틱스의 홈구장인 플릿 센터를 찾은 사람들은, 경기장
천정을 온통 뒤덮고 있는 수많은 결번된 져지들과 우승배너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비록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보스턴의 홈 팬들은 그 어느 도시의
팬들보다도 열광적입니다. 수십년의 세월동안 셀틱스를 상대했던 팀들은 셀틱스의 마스코트인 녹색 요정이 펼쳐보이는 마법에 홀린것 처럼, 셀틱스에게
속수무책으로 패해야 했고 그것은 보스턴 팬들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자랑스런 '셀틱 프라이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붕에 걸린 수많은 영광의
흔적들처럼 말이죠.
그 셀틱 프라이드의 중심에 서 있던 사나이, 그의 별명 그대로 전설을 만들고 스스로 그 속으로 걸어들어간 남자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수많은 영구결번 져지들의 중심에 당당히 걸린 번호, 33번의 그 사나이 말입니다. 예, 백인의 우상이자 셀틱스의 자존심,
래리 버드입니다.
끝도없이 펼쳐진 옥수수 농장으로 유명한 인디애나의 아주 조그만 마을인 웨스트 베이든에서 래리 조 버드는
태어났습니다. 인디애나주의 상세한 관광 지도를 보기 전에는 엔간한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을만큼 시골 마을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인구도 적었고 같이
농구할수 있는 친구들도 많지 않았던 그곳에서, 버드는 훗날 NBA를 대표하는 농구 선수로 자라나게 됩니다. 쉬지않는 연습과 열정으로
말이죠.
훗날 위대한 팀 플레이어가 되는 기틀은 이때 닦였다고 합니다. 버드는 가능한한 팀원 모두가 공을 만지고 공수를 만들어가는
플레이를 했을때 제일 기뻤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자신이 10점을 넣든 50점을 넣던지 간에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이죠.
인디애나 주립대를 이끌던 버드는 NCAA결승전에서 훗날 동서를 양분하게 되는 슈퍼스타이자 친구이며 가장 치열한 라이벌이었던 미시간
주립대의 어빙 존슨과 만나게 됩니다. 전국적인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이 경기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손꼽는 명장면이며 매직과 버드의 경쟁이
시작되는 계기였습니다. 첫 대결에서 매직은 버드에게 승리를 거두었고 고교시절에 이어 대학무대에서도 전국을 제패하며 고교-대학-NBA를 통틀어
모두 우승반지를 가져본 유일한 선수가 됩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은 NBA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죠.
1979년, 매직이 드래프트
1위로 레이커스에 합류하면서 둘은 NBA무대에서 만나게 됩니다. 버드는 팀에 합류한 이후 전년대비 +32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팀을 바로
61승 팀으로 끌어올립니다. 그는 팀내 최다 평균득점과 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신인왕을 수상합니다. 비록 우승반지는 매직이 먼저 차지하였지만
말이죠. 그리고 올스타로 선발되었으며 루키이면서 곧바로 올NBA 1ST팀에 뽑히게 됩니다.(매직조차도 이루지 못한 일이었죠) 바로 다음 시즌에
버드는 62승의 기록으로 셀틱스를 파이널에 진출시키고, 매직보다 딱 1년 늦었지만 첫 우승 반지를 손에 쥐게 됩니다.
버드와
매직의 NBA에서의 첫 대결은 1984년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둘의 대결은 역시 팬들의 엄청난 관심속에 펼쳐졌으며 7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셀틱스가 승리했습니다. 버드는 시즌 MVP에 이어 파이널 MVP를 수상하면서 1984년을 자신의 최고의 해로 만듭니다.
이후
1986년까지 버드는 3년 연속으로 MVP를 수상하면서 빌 러셀과 윌트 체임벌린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MVP를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압둘
자바와 매직은 물론, 마이클 조던도 3년 연속 MVP를 받지는 못했죠. 이 3년간은 버드의 농구 인생에서도 가장 도미넌트했던 3년이었습니다.
그는 내내 올스타였고, 퍼스트팀의
멤버였으며 팀내에서
득점-어시스트의 리더였습니다. (1986년에는 리바운드마저 팀내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죠) 이로써 그는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는 위대한
선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1987년, 많은 농구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빅 매치가 이루어졌습니다. 버드와 매직이 다시
파이널에서 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요, 매직의 불꽃같은 활약에 힘입어 레이커스가 4-2로 시리즈를 가져가고 버드는 고개를 떨구어야
했습니다.
그전까지 항상 셀틱스에게 눈물을 삼켜야 했던 배드 보이즈의 전성기가 찾아온 1988년, 셀틱스는 동부 결승에서
디트로이트에 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버드의 몸 상태 역시 예전같지 않았습니다.그의 허슬은 여전했지만, 척추부상은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1989년,
버드는 단 6게임밖에 뛰지 못하게 됩니다. 연속 올스타 출장과 올NBA 1ST팀의 기록이 깨지는 순간이었으며 버드 개인으로써도 가장 아쉬웠던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셀틱스의 자존심은 케빈 맥헤일과 레지 루이스가 버드의 빈 자리를 메꾸어주면서 지켜졌고 팀은 플옵에 진출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배드 보이즈에게 다시금 3-0으로 스윕당하면서 플옵에 가면 더욱더 강해지는 사나이, 버드의 빈 자리를 실감해야
하였죠.
건강하게 돌아온 래리 버드는 다시금 팀을 +50승으로 이끌었고 여느때와 같은 활약을 펼쳐주었습니다. 그러나 부상의 여파인지
그의 필드골 성공률은 조금씩 낮아졌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자유투 성공률은 6게임밖에 뛰지 않은 89년을 제외하고 사상 최고인 93%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리고 셀틱스는 플옵 1라운드에서 유잉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닉스에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고 맙니다.
그는 여전히
허슬 플레이어이자 샤프 슈터였으며 리바운더이자 최고의 패서였지만 그를 괴롭히는 척추 부상은 잦은 결장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자존심은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시즌을 치뤄내는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1992년, 그는 은퇴를 발표하게 됩니다.(부상을 달고 뛰던 마지막 시즌의 기록이
20.2득점-9.6리바운드-6.8어시스트입니다. 무시무시한 선수가 아닐 수 없군요)
그는 선수생활 말년에 세계 농구팬들의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미국 대표팀, 드림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비록 그는 몸상태때문에 많은 출장시간을 보여주지는 못하였지만 에이즈와
관련하여 한해 먼저 은퇴한 매직과 같은 팀에서 뛰는, 그야말로 꿈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버드와 매직은 드림팀의 정신적
지주였죠.에이스는 바클리와 조던이었지만 말입니다.
게시판에 오스카 로버트슨과 버드의 비교글을 누가 쓴것을 읽어보았습니다. 물론 두
사람은 포지션도 다르고 시대도 달랐으며 팀 구성도 달랐으므로 직접적인 비교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지만, 과연 시즌 평균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로버트슨에 비해 버드가 그렇게 떨어지는 선수였나 잠시 짚어보는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농구관련 기록중에 48분 환산
기록이라는것이 있습니다. 한 선수가 경기의 모든 시간을 뛰었다고 가정할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를 나타내는 기록인데요, 먼저 오스카 로버트슨의
기록은 이렇습니다.(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스틸-블록의 주요 5 카테고리만
비교했습니다)
생애평균기록:25.7득점-7.5리바-9.5어시-1.1스틸-0.1블록
올타임48분
환산:29.2득점-8.5리바-10.8어시-1.5스틸-0.1블록
입니다.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군요.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해본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럼 버드의 기록을
살펴볼까요?
생애평균기록:24.3득점-10리바-6.3어시-1.7스틸-0.8블록
올타임48분환산:30.4득점-12.5리바-7.9어시-2.2스틸-1.1블록
이건
숫제 괴물의 기록이 아닐 수 없군요. 위에 밝혔듯이 두 선수의 플레이했던 시대가 틀리고 포지션이 틀리며 팀구성이 틀리는 등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기에 그렇게 의미있는 비교가 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적어도 로버트슨에 비해 버드가 떨어지는 선수가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 기록도 기록이지만, 버드에게 있어서 가장 귀감이 될 만한 것은 그의 게임에 임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10년도 더
지난 고등학교때 읽은 한 만화에서 나오는 대사인데요, 버드의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여기 옮겨봅니다. 1986년, 당시 시카고와의
플옵에서 시카고의 강력한 공세에 고전하자, 버드의 팀 동료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저 치들 만만치 않은데? 힘들겠어
오늘은'
'약해빠진 소리하지마. 우리는 챔피언이다. 상대가 죽어라고 덤벼들면 우리도 죽어라고 상대해주는거야. 그게 챔피언이라구'
짧은 대사지만, 챔피언으로써의 자존심과 함께 그가 게임에 임하는 자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살짝 엿볼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그의 진가는 큰 경기에서,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서 더 빛났습니다. 디트로이트와의 플레이오프전, 몇초 남지않은 시점에서 셀틱스는 1점차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순간 허둥대던 아이재이아 토마스의 인바운드 패스를 버드가 스틸했고 쇄도하는 DJ에게 침착하게 패스, 버저와 함께 공은 그물을 갈랐고 셀틱스가 1점차로 역전한 경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역시 마지막 순간, 넘어지다시피 던진 3점슛은 정확하게 림을 가르기 일쑤였으며 자신이 쏜 슛을 자신이 리바운드하면서 백보드 뒤쪽의 불가능한 각에서 굴려넣은 핑거롤 역시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는 킬러 본능을 가진 사나이였고 위기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멋진 플레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엔 항상 4만개의 눈이 버드를 주목한다, 그리고 그도 그 사실을 안다'
로버트 패리쉬의 말입니다. 그 숨막히는 시간을 버드는 오히려 즐겼으며 보스턴의 열광적인 4만개의 눈뿐 아니라 티비를 보던 수백만개의 눈들에 잊혀지지 않는 감동을 선사한 그는, 그야말로 진정한 클러치 플레이어였습니다. 그의 수준에 필적하는 클러치 슈터는 제리 웨스트와 마이클 조던정도가 될까요?
리그에 들어오자마자 어마어마한 패싱을 선보인 매직과 함께. 버드는 또한 최고의 패서중 한명이었습니다. 열심히 움직여서 수비를 따돌리기만 한다면, 분명히 공이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버드와 매직의 동료들은 뛰었고 항상 그 순간에 그들은 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매직의 화려함에는 비교하기 힘들지만, 버드의 시야는 매직에 비견될만큼 넓었으며 수많은 킬패스를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그 플레이의 바탕에는 시골 마을에서부터 시작되었던 팀 플레이어로써의 헌신이 담겨 있었죠. 그는 단순한 에이스가 아니라 진정한 팀 플레이어 이기도 했습니다.
80년대의 NBA를 초 인기 스포츠로 탈바꿈시킨 전설적인 플레이어이자 아이콘이었던 래리 버드, NBA를 전 세계인들이 시청하는 인기 스포츠로 만든데는 물론 마이클 조던이 일등공신이지만 버드와 매직이 다져놓은 반석 없이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아직도 열두살때인 1987년의 AFKN중계를 기억합니다. 비록 말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버드와 매직의 장엄한 사투는 말이 필요없는 명장면이었으니까요. 누가 승리를 했던지간에 말이죠.
버드가 백인이라서 과대평가받는다는 말에는 저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백인이라서 약간의 관심을 더 받을수는 있을지 몰라도 백인이라는 사실이 그 선수를 이기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버드는 백인이라서 최고가 된 것이 아니라 최고의 농구선수였는데 피부색이 하얀 색이었을 뿐입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피부색이 하얀것이 농구를 잘하는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최근 자주 보이는 케빈 가넷과 버드의 비교글을 보면서, 전 씁쓸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분명 버드는 80년대의 선수이고 가넷은 현재를 뛰고 있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버드는 그가 남긴 업적으로 당당히 전설이 된 선수이며 가넷은 아직 증명해야 할 것이 많이 남은 선수이죠. 저는 가넷의 다재다능함과 열정을 좋아합니다만 그것이 왜 버드와 가넷을 비교하는 이유가 되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넷에게 전화통화를 할 수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버드가 너보다 못하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아, 가넷은 저랑 동갑입니다)' 고 말이죠. 물론 제 추측입니다만, 가넷은 분명 배를 잡고 웃던지 정중히 그런 비교는 사양한다고 할걸로 믿어집니다.
래리 버드는,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가지고 팀에 헌신함으로써 스몰 포워드라는 포지션의 나아갈 방향을 정립시켜준 위대한 선수입니다. 포스트 조던의 이야기는 아직도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지만, 포스트 버드의 이야기는 왜 없는지 전 신기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저는 제2의 조던 만큼이나 제2의 버드를, 피펜을 더 보고 싶습니다.(그 모습을 혹시 르브론 제임스에게서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저는 요즘 즐겁습니다) 부디 리그의 젊은 선수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버드와 매직같은 최고의 라이벌들로 성장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njoy my life! > I Love This Ga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퍼스의 전설.. 데이비드 로빈슨 (0) | 2006.02.04 |
---|---|
위대한 전설의 센터…하킴 올라주원 (0) | 2006.02.04 |
영욕의 18년, '밀러타임' 레지 밀러 (0) | 2006.02.04 |
'파란만장' 그랜트 힐의 농구인생 (0) | 2006.02.03 |
NBA 트리플 더블 (0) | 2006.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