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박종민 [http://paper.cyworld.com/vince0625]
난 조던 세대다. 나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조던의 농구 인생 중 수많은 순간들을 생생히 목격하며
자라왔다. 피닉스 원정에서 존 팩슨이 결승 3점 슛을 던질 때, 난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농구 대잔치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NBA를 접하기 전, 동네 형들을
통해 조던에 대해 처음 들은 기억이 난다. 자유투 라인에서 덩크 슛을 하는 선수가 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비아냥거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수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다. “사실 일까?”, “정말 그런 선수가 있을까?”. 그 당시 NBA를 접할 방법은 AFKN를 시청하는
길밖엔 없었다.
TV를 켰다. 그리고 12번 AFKN을 틀었다.
그때가 아마 토요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점심 때 쯤 이었을 것이다.
한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NBA 조던 카드로 인해 조던의 모습을 첨 알게 되었고 마침 TV에
그의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그렇게 조던을 처음 접하게 됐던 나는 이후 조던에 철저히 매료되었다.
지금 나이 40을 전후한 NBA팬 분들에게는 91년 겨울 HIV 바이러스 감염으로 은퇴를 선언한 MJ가
가슴 속에 살아있는 스포츠 영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나를 비롯해 인터넷 농구관련 매체에 활발히 글을 올리고 있는 대부분의 팬들은
아마 23번 MJ와 희로애락을 같이 했을 것으로 느낀다.
혹자는 말한다. ‘코비가 조던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더 뛰어나지 않느냐고. 티맥이 득점력 면에서
조던보다 더 큰 폭발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카터는 덩크에 관한 한 조던 그 이상이다.
르브론은 조던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맞는 말일 수 있다. 코비는 과거 자신의 말처럼 분명 조던의 일부를 모방했지만,
자신만의 무언가를 창조해 낸 선수이기도 하다. 티맥 역시 올랜도 시절, 조던을 연상케 하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했었다.
카터도 토론토 시절 역대 최고 수준의 덩크 슛을 선보이며 차세대 조던으로 주목받았던 선수였다.
르브론은 32번 MJ와 23번 MJ의 장점을 두루 갖춘 선수로 데뷔 4년 만에 컨퍼런스 우승을 거머쥐면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포스트 조던’으로 주목받았던 그 어떤 선수도 농구, 아니 스포츠 자체를 감정적 유비쿼터스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시카고 불스 시절, 조던은 시카고의 상징이었고 미국의 상징이었으며 스포츠의
상징이었다.
농구라는 말을 들으면 조던이 연상되었고 조던을 통한 상품 마케팅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조던의 팬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학생 시절, 나 역시 경험했던 이야기다.
조던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스포츠 뉴스를 꼭 챙겨봤다.
밤 9시 45분이 되면 KBS와 MBC를 꼭 번갈아가면서 조던 뉴스가 나오기를 고대했다.
그리고 밤늦게 ‘스포츠 중계석’이나 강석 씨가 진행하는 ‘스포츠의 세상’을 보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파이널이 중계되는 당일 날이면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해 감기 몸살을 이유로 선생님께
조퇴 허락을 받았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Live로 진행 중인 파이널을 지켜봤다.
다시 보기위해 녹화는 필수였다. 당시 어린 마음에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꼈지만,
지금 생각하면 분명 잘한 일이었다.
잘한 일이라는 사실에는 명백한 하나의 이유가 존재한다. 당시 들었던 국, 영, 수, 과, 사의 책 몇 페이지
내용보다, 파이널이라는 캔버스 위에 조던이 그렸던 많은 그림들이 더 생생히 기억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의 조각조각이 모인 조던의 인생은 지금도 나에게 많은 삶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몇 페이지 교과서 내용으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그런 내용이었다.
학창 시절, 성실히 공부해왔던 나였지만 농구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다.
조던처럼 농구하고 싶었다. 방과 후 무수한 연습을 통해 실력을 키워나갔고
특히 NBA 선수들을 따라하면서 급격한 발전을 거듭했다.
워낙 어린 나이에 NBA를 접한 탓인지 또래 친구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많은 동작들을 구사했었다.
그 결과 각종 3대3 농구대회에서 입상하며 10대 시절의 어린 꿈을 이뤘다.
세상을 거머쥔 조던과는 천양지차의 결과였지만 나에겐 열정으로 이뤄낸 소중한 성취였다.
조던은 91년 매직 존슨을, 92년 드렉슬러를, 93년 바클리를 물리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2년간의 방황 끝에 다시 코트에 복귀했다.
그러나 95년 페니-오닐 콤비에 무너지며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96년 페이튼-켐프를 물리쳤다. 이후 2년간 스탁턴-말론 콤비를 제압하면서
역대 최고 선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 마디로 조던의 농구 인생은 실패를 통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학창 시절, 조던의 그런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면서 삶의 많은 교훈을 얻었다. 내 인생에도 몇 차례 굴곡이
있었지만 다시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조던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내가 지켜봐온 농구는 결국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든다.(여기서 말하는 일례는 특정선수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칼라시모 감독의 목을 졸랐던 스프리웰처럼 부모나 선생을 상대로 반인륜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는 가하면, 스탁턴처럼 한 자리에서 성실히 공직생활을 하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힐처럼 끊임없는 재활을 통해 병마를 이겨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페니처럼 한때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던 사람이 병으로 인해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는 사람도 있다.
로버트 오리처럼 가는 회사마다 번창을 거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론처럼 회사를 옮겨도 자신이 목표했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퇴직하는 사람도 있다.
또 로드맨처럼 나이를 잊고 삶에 대한 열정으로 인생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더러 있다.
놀랍게도 농구와 인생은 이처럼 비슷한 점이 많다.
결국 내 희망 사항 역시 내가 좋아하는 선수의 농구 인생처럼 멋들어지게 살아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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